[세계 종교 사상사] 7장 "이스라엘이 어렸을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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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임 작성일25-05-06 14:36 조회8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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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야훼의 시작
53. 창세기의 처음 두 장
『모세오경』은 서로 다른 경향을 가진 텍스트들을 집성한 것으로, 수 세기에 걸쳐 재해석되고 수정되고 편집된 구전 전승을 보여준다. 「창세기」의 처음 11개 장의 편집은 『모세오경』의 다른 텍스트들의 편집보다 훨씬 나중에 이루어졌다. 히브리 민족은 태초의 시간에 발생한 위대한 신화적 사건을 말해주는 기원의 역사보다는, 오히려 “성스러운 역사(구원사)”, 즉 그들과 하느님의 관계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성서 기술의 독특한 구조 1. 말씀에 의한 창조 2. “좋은” 세계의 창조, 그리고 3.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좋은” 생명체(동물과 식물)의 창조 4. 끝으로 우주 창조 행위는 인간의 창조로 완성된다.
[사제계 문서: 가장 후대의 자료] 세상은 좋은 것이며 인간은 신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를 만든 창조주이자 모델인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낙원에서 산다. 그러나 조상들이 범한 일련의 실수와 죄의 결과로 더 이상 낙원에 살지 못하고 고통을 받게 된다. 인간이 타락한 데에 하느님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인류의 자기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야훼 문서 BC10C~9C] 홍수로 사막을 비옥하게 만드는 사건,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생명을 주는 것, 에덴동산과 이브의 창조 등의 내용. 성서 해석자들은 야훼 문서의 설명이 보다 단순하며, “형태”의 세계를 물과 연관된 “혼돈”과 대비시키지 않고, 사막과 건조함을 생명과 식물에 대비시키는 기원 신화는 사막 지역에서 형성된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한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여성이 창조되는 것은 원초적 인간의 양성구유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양성구유성은 수많은 문화가 공유하는 관념인 신의 양성성(전체성, 통일성을 나타내는 여러 정식 중 하나)을 모델로 삼고 있다.
54. 잃어버린 낙원. 카인과 아벨
에덴동산은 성서의 낙원으로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한가운데에 생명의 나무, 지식의 나무가 서 있다. 야훼의 금지(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지식의 실존론적 가치가 담겨 있다. 안다고 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순진한 희생자 아담은 실패한 “불사 추구”의 이야기에 해당하며 그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아담의 “입문 의례적 실패”는 근거가 충분한 징벌로 재해석되었다. 그의 불복종은 반역 천사의 자만심, 즉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무심코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범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원죄”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학에서 중요한 기초 개념이 되었다. “타락”을 이렇게 해석하는 관점은 신의 전지전능함과 질투심을 중심에 둔 종교안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이것은 야훼주의적 일신교의 권위가 증대해가는 것을 보여준다.
「창세기」 4장~7장의 편자는 이 최초의 죄가 낙원의 상실과 인간 조건의 변화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 말한다. “땅을 경작하는” 카인과 “양치기” 아벨의 에피소드는 농경민과 목축민의 대립과 암묵적으로 목축민을 변호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55. 홍수 이전과 이후
[홍수신화-최초 인류의 타락] 야훼는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한 것과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보고 인간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고 노아 가족을 제외하고 인간을 멸망시킨다. 이것은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와 공통점이 있다. 「창세기」의 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중근동의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던 원자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놓을 수도 있다. 홍수신화가 공유하는 상징에는 타락한 세계와 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원초적인 완전함으로 복귀하기 위해 철저히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야훼는 인간의 타락을 벌하고, 대홍수의 희생자들을 애도하지 않는다. 야훼가 도덕적 순수성과 복종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모세에게 드러나게 될 “율법”의 성격에 대해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바벨탑 신화-제2 인류의 타락] 어느 날 인간이 “끝이 하늘에 닿을 탑”을 쌓을 때 야훼는 인간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그들을 온 세상에 흩어버린다. 이와 비슷한 상징을 간직한 바빌로니아의 지구라트는 계단을 올라감으로써 왕이나 제사장은 의례적으로(즉 상징적으로) 하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성서의 편자들은 탈신성화하고 탈신화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세기」의 최종 편자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신화 체계를 통째로 보존했다. 즉 「창세기」는 우주 창조와 인간 창조에서 시작하여 조상들의 “낙원” 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타락”의 드라마를 그것의 운명적인 결과(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살기 위해 노동해야 한다는 것 등)와 결부시키고, 홍수를 정당화하는 최초의 인류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제2의 인류가 새로운 “반역 천사적” 계획을 꾸민 결과, 언어적 통일성을 상실하고 뿔뿔이 흩어진다는 이야기로 마치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 체계는 결국 “성스러운 역사”를 구성한다. 그것은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현실적인 인간의 조건을 설명한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신성한 역사”는 아브라함 이후, 특히 모세에 이르러 범례적인 것으로 정착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종교적 재능을 발휘하여, 하느님과 선택된 민족의 관계를 이전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성스러운 역사”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다.
56. 족장들의 종교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는 야훼의 지시에 따라 칼데아의 우르를 떠나 하란, 세켐을 거쳐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사이로 이동했다.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손자 야곱, 증손자 요셉의 모험담은 족장 시대를 구성한다.
족장들의 종교는 “아버지의 하느님”에 대한 숭배를 특징으로 한다. 하느님은 “나의/너의/그의 아버지의 하느님”으로 불리거나, 고유명사 앞에 “아버지”라는 단어를 붙여 “아브라함의 하느님”,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 등의 정형구로 사용한다. “아버지의 하느님”은 원래 아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까운 조상들의 하느님이다. 그 하느님은 조상들에게 나타남으로써 일종의 혈연 관계를 가진 존재가 된다. 이 하느님은 유목민의 신이며, 성소가 아니라 인간의 집단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과 동행하고 그들을 보호한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하느님”은 엘 신과 동화되었다. 이는 가족이나 씨족의 신으로는 확보할 수 없었던 우주적 양상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종교적 종합이 성공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이들은 원초적인 유목 문화의 희생 제의와 돌기둥을 세우는 가나안의 종교 제의도 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57, 아브라함, “믿음의 아버지”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의례는 계약의 희생 제의와 이삭의 희생이다. 전자는 하나님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땅, 자손, 복을 약속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어떤 의무도 지우지 않고 하느님이 의무를 지는 약속이다. 후자는 하느님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명령했고 아브라함은 복종한다. 이삭의 희생은 장자의 희생이 아니다. 신에게 자기의 맏아들을 바치는 사람들은 그 의례의 의미 및 주술-종교적 힘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반면,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명령한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신성함과 완전함, 그리고 전지전능함을 믿었다. 하느님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범죄와 구분되지 않는 행동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었다.
성스러움의 변증법 : “범속한” 것은 “신성한” 것으로 전환하면서도 본래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그 “신성화”는 지성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성한 것”은 인식할 수 없다.(“신성한 것”은 “범속한 것”과 완전히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58. 모세와 이집트 탈출
출애굽 사건들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했다.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 자체가 전형적인 범주를 모델로 하여 다시 조직되었기 때문에 “실제성”을 파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출애굽은 민족 전체의 탈출이 아니라 모세가 이끄는 집단의 탈출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평화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부족들의 성스러운 역사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주장되기에 이른다. 출애굽과 유월절 축제의 연관은 유목민 특유의 원초적인 희생 제의가 재평가되면서 야훼 신앙의 “성스러운 역사” 안에 통합되었다.우주적 종교성에 속하는 의례(유목민의 봄 축제)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의례로 재해석 되었다. 우주적 형태를 가진 종교 구조가 성스러운 역사적 사건으로 변형되는 것은 야훼 신앙의 일신교적 특징이다.
59.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니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라고 답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 방식을 언급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야훼는 자신이 아브라함과 다른 족장들의 하느님이라고 선언한다. “아버지의 하느님”과 모세에게 나타난 하느님 사이에 일정한 연속성이 보인다. “아버지의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야훼는 특정 장소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집단의 지도자인 모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차이점은 “아버지의 하느님”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야훼는 신비성과 초월성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고유명사이다. 신과 그 신을 숭배하는 자 사이의 관계가 변화하고, 사람들은 이제 “아버지의 하느님”에 대해서가 아니라 “야훼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족장들의 자손을 “나의 백성”이라 일컫는 야훼의 “사적 소유물”이 되었다. “아버지의 하느님”이 엘 신에게 동화될 때와같이 야훼는 엘로부터 왕이라는 칭호와 더불어 그의 우주적 성격을 물려받았다.
계시의 본질인 십계명에 야훼 신앙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첫 번째 계명 “너희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는 야훼가 “질투하는 하느님”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한다. 두 번째 계명 “너희는 어떤 것의 모양을 본떠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교도의 종교 의례에서 사용되는 우상은 신성을 수용하는 하나의 수용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계율은 제의의 도구로 야훼를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일 것이다. 야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형태”도 가지지 않아야 한다. 근동의 다른 신들은 인간이나 동물, 자연물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야훼는 인간의 모습으로만 인식되었다.
출애굽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 사막의 성소에는 언약궤를 보관하는 나무상자가 안치되어 있다. 궤는 눈에 보이니 않는 신의 존재를 상징한다. 모세는 계시를 매개함으로써 엑스터시의 상태로 들어가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예언자가 됨과 동시에 “주술사”가 되었다. 그는 레위 부족에 속하는 사제들의 모델이며 최고의 지도자로서 한 부족 집단을 이스라엘인이라는 민족의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60. 사사 시대의 종교: 혼합주의의 첫 번째 단계
모세가 이끌었던 집단이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가나안에 들어 갔던 BC 1200년부터 사울이 왕위에 오른 BC 1020년 사이의 시기를 사사士師Juges 시대라고 부른다. 사사는 군사적 지도자, 조언자, 재판관이었다. 이 시기에 야훼 신앙은 변화를 겪는데 모세 시절에 사용되었던 이동 성소는 폐지되고 제의는 성소와 성지에서 올려지게 된다. 가나안 종교와의 갈등이 펼쳐지는데 야훼와 바알이 혼동되고 둘은 나란히 숭배되었다. 바알은 “농지의 신”, 풍요를 가져다주는 전문적인 신으로 이해되다가 후대에 배교의 전형이 된다.
가나안의 희생 제의 체계는 야훼 신앙 속으로 흡수되었다. 가나안의 영향은 대단히 깊고 여러 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의례의 구조, 성소와 성지는 가나안의 것을 물려받았으며, 사제 계급은 가나안의 모델을 모방하여 조직되었다. 이후의 예언자들(나빔: 가나안 지역의 토착적인 샤먼적 예언자들)은 보다 순수한 야훼 신앙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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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준비하면서 근동의 나라들은 자연신을 숭배하는 다신교적 저차원의 대칭성을 유지했는데 이스라엘은 왜 유일신이 필요했을까 궁금했다. 종교사를 공부하면서 수많은 제국의 약탈 속에서 약소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 중 하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수없이 사라져간 그 시대의 약소국 중에 유일하게 유일신을 만들고 오로지 자기 민족만 선택받고 복을 받겠다는 욕망은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욕망은 신의 모습에도 투영된다. 유일신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에 반드시 벌을 내린다. 선악과를 금지하여 지식을 독점하고 어기면 에덴에서 추방하여 벌을 내리고, 의례적으로 신성함을 경험하는 탑은 신과 같아지려는 신성 모독으로 해석하고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여 사람들을 흩어버린다. 무조건적인 복종과 믿음만이 복을 받는 조건이다. 다신교의 신들은 부정당하고 오로지 야훼만을 폭력적으로 믿게 했다.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보이는 선민사상이 그들을 결속시키고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주었지만, 그래서 민족의 대이산과 대수난이라는 댓가를 치러야 했다. 지금도 레반트 지역에서 계속되는 유일신들의 전쟁은 전체성과 대칭성을 상실한 유일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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