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사상사] 9장 고타마 붓다 이전의 인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지완 작성일25-05-27 13:17 조회38회 댓글0건첨부파일
-
우주적 희생 제의와 아트만.hwp
(79.5K)
5회 다운로드
DATE : 2025-05-27 17:19:05
본문
우주적 희생 제의와 아트만-브라흐만의 동일성
9장은 베다 시대부터 고타마 붓다 이전까지의 종교변천사를 다루고 있다.
희생 제의의 중요성이 희생의 내재화로 이어지고 고행으로 신에게 이르는 방법을 수용했다. 이후 자기 행위의 중요성으로 아트만이 브라흐만에 가닿는다고 여겼다.
의례는 가정 제의와 공식 제의(슈라우타)라는 두 개의 범주가 있었다. 정화 의례 중에 우파나야나(모태로의 회귀하는 의례)가 중요했는데 스승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성년 입문 의례이다. 다른 여러 가지 의레들 중 최고의 희생 제의는 말을 바치는 아슈바메다, 비슷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푸루샤메다가 있다. 입문 의레(디크샤)는 신참자의 희생 또는 상징적인 모태로의 회귀를 통해 의례적 죽음을 경험한다. 의례적 죽음은 신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동시에 현세에서 충만한 생명을 획득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다. 베다 시대에는 희생 제의에 의해 획득된 "신성화"가 신들이 사는 천상으로의 의례적 상승을 통해 읠케 집행자는 물론 사회 전체, 그리고 자연은 축복을 받고 재생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의례적 재생이 우주 창조와 세계의 재생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왔다.
베다의 시인이나 신학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기본적으로 다음 네 가지 유형의 창조 신화였다. 1) 원초적인 물의 수태에 의한 창조. 2) 원초적 거인 푸루샤의 해체에 의한 창조. 3)유이기도 하고 무이기도 한 단일적 총체성으로부터의 창조. 4) 하늘과 땅의 분리에 의한 창조.
푸루샤가 자기 스스로를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 우주를 창조했던 것처럼 프라자파티는 우주 창조의 과업을 완수한 후에 치명적인 피로를 느꼈다. 푸루샤와 프라자파티의 동일성은 여러 텍스트들에서 확인된다. 태초에 프라자파티는 물질화되지 않은 단일한 총체성, 즉 순수한 정신적 존재였다. 그러나 욕망에 자극받은 그는 스스로 증식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고행(타파스, 문자적 의미로는 열기)을 통해 스스로를 극한에 이를 정도로 뜨겁게 만들고 그 열의 방사에 의해 세계를 창조했다.
프라자파티와 우주, 순환적 시간(1년), 불제단을 3중적으로 동일시하는 관점은「브라흐마나」에 나타나는 희생 제의 이론의 혁신성을 보여준다. 거기에서는 베다 의례에 생기를 부여했던 관념들이 쇠퇴하고, 우파니샤드의 저자들이 발견하게 될 새로운 이념이 준비되고 있었다. 기보적인 사상은 프라자파티가 "열"을 내뿜고 그것을 "방사"하면서 스스로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마침내 피로로 인해 소멸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핵심 개념-타파스(고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와 비스리주(열의 방사)-
은 간접적으로 혹은 함축적으로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의 종교사상에서 고행과 성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라자파티의 신화와 그 안의 이미지들은 우주 창조를 생물학적 용어로 설멸한 것이다. 「브라흐마나」에 나타나는 희생 제의의 본래 의미는 순환적 시간(1년)에 의해 탈관절화되고 소진된 우주를 재창조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프라자파티를 전체적으로 다시 만드는 것은 제의 집행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동일한 일체화 작업을 실천한다는 것으로, 희생 제의를 통해 신들이 "자기"를 회복하는 것처럼 제의 집행자도 자신의 아트만을 회복한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희생 제의는 타파스와 동일시되었다, 신들은 제의를 통해서만 아니라 고행을 통해서도 불사성을 획득했다고 전해진다. 베다 의례에서는 신들에게 소마, 녹은 버터 그리고 성스러운 불을 바치지만, 고행의 수행에서는 "내면적 재물"을 바친다.
프라자파티가 우위를 점해감에 따라 베다의 신들을 그들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상실했다. 우파니샤드의 저자들은 희생 제의 가치를 부정하고 아트만에 대한 명상 없이 희생 제의의 체계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라고 공언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