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시련](3)_결코 완결되지 않는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26-03-18 17:52 조회34회 댓글0건첨부파일
-
종교인류학3 [미로의 시련] 결코 완결되지 않는 삶.hwp
(78.5K)
0회 다운로드
DATE : 2026-03-18 17:52:11
본문
[종교인류학](3) - 『미로의 시련』
결코 완결되지 않는 삶
2026.3.18. 최수정
바로 여기, 정해진 리듬과 주기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우주 안에서, 인간적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 인간적 정황을 이 근본적인 조건에 근거하여 받아들이는 근본적 인간은 삶의 의미를 논하고 있는 종교적 인간이다.(189p)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미로의 시련』에서 그 자신은 잃어버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했던 또 다른 말, ‘자기 행위의 결과를 포기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208)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우주적 질서는 언제나 역동적이다. 어떤 속성이나 성질에 의해 한정되어 있지 않다. 낮과 밤, 빛과 어둠, 땅과 하늘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전체를 이루고 있는 본질적인 것이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우주의 질서가 이러한데 우주에서 보편적 존재인 인간이 우주의 질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우주의 역동성과 함께 변화하는 조건은 인간에게 언제나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다. 가능성을 수행하는 삶은 변화무쌍한 세계처럼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엘리아데에게 완결되지 않고 끝없이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학’적 연구방법은 우주적 질서를 따라가는 전형적인 행위다. 언제나 비종결적인 해석학적 인식법은 우주의 창조성을 닮았다. 이 또한 완결된 결과를 위해서라기보다 ‘그 표현의 의미를 점점 더 깊이 파 들어가는 것’(205p)으로 언제나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이 방법은 근원적인 상징들의 숨겨진 의미와 변화를 드러냄으로써 즉각적 경험의 차원에서는 또렷하지 않은 어떤 가치를 드러내 준다.(206p) 해석학은 우주적 리듬의 신비가 표현된 것을 보고, 스스로 복원하고 지속하는 생명의 신비로움에 연구자 자신의 삶도 달라지게 한다. 해석학은 엘리아데에게 ‘자신의 정황을 체험하는 것’(239p)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그에게 해석학은 우주의 질서를 수행하는 일상의 종교적 형식이었다.
나는 모든 일에 완결된 끝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로의 시련』에서 엘리아데는 오히려 끝이 정해지지 않는 결과가 삶의 의미를 만든다고 했다. 잘 생각해보면 끝없이 역동적인 우주적 질서에서 인간 삶만이 종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 따라서 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주적 질서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추룽가’의례에서 ‘자신이 바로 그 조상’(250p)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입문자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추룽가는 입문자들의 삶의 형식이 오래전 조상의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조상의 행위를 모방하고 재현하는 행위 속에 삶의 끝나지 않는 연속성을 체험한다. 연속성의 기억은 우주와 근본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보편적 인간에게 간직되어 있다. 그 기억은 결코 종결되지 않는 삶에 잃어버린 것 없이 되돌아와 새로운 삶의 조건이 되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