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1) 낯설고도 친숙한 샤마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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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olyule 작성일26-03-25 17:03 조회3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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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5 샤마니즘 김유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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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6-03-25 1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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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_『샤마니즘』_김유리 2026.3.25
친숙하고도 낯선 샤마니즘
유라시아인에게 친숙한 샤마니즘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샤마니즘』(이윤기 옮김, 까치, 1991, 재쇄 2001) 공부에 들어가면서 느낀 점은 샤만의 존재와 의례 형식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느낀 점은 샤만 의례의 내용들이 동화 같다는 것이다. 끝으로 샤마니즘이 신화적 시간을 복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싶었다.
샤마니즘은 엄격히 말해서 “시베리아와 중앙 아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종교 현상”(24)이다. 샤마니즘은 오래된 접신 기술이다. 샤만은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특별히 접신의 소질을 계발한 자로서 병을 치료하고 망자를 명계로 인도하고 신들 사이에서 중보자로 봉사한다. 샤만이라는 이름은 퉁구스어 샤만(saman)에서부터 러시아어를 통하여 유래했다. 중앙 및 북아시아 광대한 지역에 샤만에 상당하는 여러 단어가 있다. 우리말에도 무당, 무속인, 심방(神房, 제주) 등 샤만의 상당어가 있다. 관련해서 신병이나 굿 같은 개념도 흔하게 퍼져있다. 말이 달라도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속 행위를 볼 때 대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샤마니즘이 어떻게 전해졌을까? 국경이 있는 국가 단위로 생각하는 습관에 빠져 있다가 유라시아라는 광대한 범위와 그곳을 돌아다닌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동화와 샤마니즘의 차이
샤만이 접신 체험에서 겪는 일들은 동화 속 주인공의 모험 같다. 샤만은 지하세계로 하강했다가 천계로의 상승하는가 하면, 영신(靈神)들이 사는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다. 그는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해서 경험 많은 스승의 인도를 받고 동물들의 조력을 얻는다. 악령들에게 붙잡혀 요릿감이 되고, 요정과 결혼한다. 새처럼 날고, 투시력을 갖는다. 동아줄이나 무지개 뱀, 넝쿨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지고한 존재에게 주술과 치유력을 요청한다.
샤만의 여행은 의례에서 모험담으로 구술되고 연출되기 때문에 공동체마다 모두 다른 구체적인 표현물들이 동원된다. 신비한 여행이라는 테마는 동일한데 동원되는 소재들의 경우의 수가 많다. 다채로운 표현형들만 보아도 재미있고 그것이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니 의미심장하다. 흥미로운 점은 테마를 담을 수 있다면 사실상 일상의 모든 것이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빗자루가 영혼을 씻어내고 우물, 오두막, 대장간이 영혼 변화에 기여한다. 평소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로서 동식물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재미의 요소이다. 일상이 성스럽고 타자와 대화하는 여행지에서 어느 하나 대수롭지 않거나 불필요한 것은 없을 것 같다.
샤만의 모험은 입문의례만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반복된다. 그는 처음에 입문적 접신 체험을 통해 모르는 곳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데 성공하며 샤만이 된다. 이것은 죽음의 체험과 재생을 의미하는 의례다. 최초에 샤만은 개인적으로 소명의 징표인 신병을 치유하고 존경받는 샤만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밟는다. 병이 든 것은 영혼이 길을 잃은 것이라고 한다. 샤만은 공동체 구성원이 병이 들면 접신 상태에 의도적으로 들어가 그의 영혼을 찾아서 붙잡아 온다. 접신 상태는 제의적 죽음이다. 그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특별한 전문인이다. 한 번 죽는 것도 어려운데 죽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니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인간에게 한계가 있기는 한 걸까?
신화적 시간의 회복
샤만이 탈혼망아 상태로 진입하는 곳은 신화적인 시간 속이라고 한다. 역사적 시간에서는 동물이 인간에게 적대 관계에 있지만, 신화적 시간에서 동물은 형제로서의 연대를 느끼며 샤먼을 알아보고 다가가 말을 건다. 신화적 시간은 사별했던 죽은 자들에게 배우는 곳이고 우주를 창조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신과 반신적 존재들과 만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샤만은 최초의 인류들처럼 창조주에게 용기있게 다가간다. 창조의 때에는 하늘과 땅이 서로 통했고 그 사이를 인간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잃어버린 그 시간을 샤만은 개인적으로 되돌아가는데 엘리아데는 그 일이 최초 인류의 행복감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미 원주민들의 경우 이러한 경험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편화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러한 신화적 시간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역사적 시간이 인간이 알고 있는 시간의 반쪽에 불과하다는 주장인 것일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성스러운 것에 대해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는 이중 감정인 매혹과 공포와 관련 있는 것일까?
아시아 언어 지도
(유라시아경제문화협회 블로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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