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시련](2) 집과 길 >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미로의 시련](2) 집과 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coolyule 작성일26-03-11 19:41 조회24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집과 길

 

방향 상실

나는 매일 가출한다. 공부하고 싶어서. 그런데 마음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마음이 집에 남아 있다. 지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얼른 가서 해놓고 다시 나올까? 몸이 돌아가면 이번에는 마음이 집을 나갈 것이 틀림없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산만하다.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꽉 막힌다. 몸과 마음 둘이서 재미없는 잡기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는 집에서 나와 길을 잃은 것일까?

엘리아데는 고향 루마니아를 떠나 서유럽 나라들을 거쳐 미국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엘리아데는 고향에서 쫓겨난 정주민의 심정이었을까? 70대의 엘리아데와의 대담집 『미로의 시련』(북코리아, 2011)을 보면, 그에게는 상실감도, 그로 인한 분노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이 농경민의 후손이면서 절반은 유목민의 후예라는 의식이 있었다. 루마니아 목동들은 국경 너머로 돌아다녔다.(“루마니아인 되기”, 153~63) 유목민은 정주민과 ‘집’에 대한 관념이 다르다. 그들에게는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돌아다니는 곳이 집이 된다. 그들은 집과 함께 돌아다닌다.

 

중심 세우기

엘리아데는 집, 그러니까 삶을 영위하는 장소라는 관념을 깊이 파고 들어간다. 인간은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로 생존만 하는 것은 잘 견디지 못한다. 두 발로 선 인간은 먼저 방향을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가 넓은 우주의 어디쯤인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그래도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심 세우기다. 먼저 나의 몸이라는 세로축을 하나 세운다. 그러면 위와 아래라는 방향이 하나 생긴다. 그리고 똑바로 서서 나의 앞과 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사방을 설정한다. 중심이 서면 방향이 설정되고, 방향이 정해지면 걷는다. 인간이 자기가 머무르는 곳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그렇게 세운 중심이 곧 우주의 중심이다. 우주의 중심은 인류가 집이라고 여겨온 장소들에 담겨 있는 의미다.(“조국, 세계” 164~66, 213)

가출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그런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은 새 중심을 세우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왜 중심을 다시 세우지 않았을까?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싫어서인 것 같다. 그런데 두 중심을 갖는다는 것은 뭘까? 아니, 중심을 늘려간다는 것은 뭘까? 중심을 세우는 것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중심을 늘려가는 것은 길을 계속 가지 못하게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갈림길 앞에서 붙들리는 방향 상실 상태이다. 엘리아데는 여러 집을 옮겨가며 살았지만 자신을 길 잃은 상태에 두지 않으려고 했다.

 

동굴과 유리병

엘리아데는 인도에서 요가를 수련할 때 은자들의 절벽 동굴을 순례했다. 오십 년 전에 떠난온 히말라야의 동굴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동굴로 돌아가고자 했을까? 다시 갈 수 없다는 이유로 분노했을까? 그는 되찾지 못한다고 해도 동굴이 거기 있다는 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은자들의 동굴은 언제까지나 그에게 고독과 자유를 일깨운다고 한다. 그는 조건의 제약을 받는 인간에게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는 영성의 차원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한다.(“영원한 인도”, 101-105)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있다가 꿈을 꾸었다. 모르는 남자가 묵직한 유리병 두 개를 사주는 꿈이었다. 양손에 병을 받아 들고 난감했다. 그 남자의 동생이 나타나서 두 개 다 환불해 주고 갔다. 홀가분했다. 두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둘 다 환불하는 방법도 있었다니……. 중요한 것은 가볍게 길을 계속 가는 것이었던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