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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임 작성일25-09-23 03:56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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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종교의 구원: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는 사이비(似而非)나 이단과 비슷한 계열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편견은 보통 사이비나 이단 종교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났을 때 형성된다. 신천지나 JMS 등과 같은 사이비 종교는 교주와 신도들의 혼음 난무 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금전적으로, 성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음에도 여전히 신앙을 유지하는 모습은 맹신하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보인다. 교주의 비정상적인 모습과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워 보이는 신도들에 대한 이미지는 신비 종교 의미지에 덧씌워지면서 편견이 생성된다.

엘리아데의 세계 종교 사상사는 신비 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는 신비 종교가 고대인들의 종교적인 원형들을 반복하는 것으로 본다. 나아가 세계의 모든 종교도 고대인의 종교적인 원형들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대의 종교적인 원형을 반복하는 걸까? 신비 종교의 두 가지 구원론인 디오니소스 비의와 오르페우스교를 비교하면서 고대의 종교적인 원형이 반복되는 이유를 나의 지복과 연결하여 살펴보자.

 

신비 종교

신비(神祕) 종교 의례에는 폐쇄적 입문 의례(교리문답, 의식, 비밀스러운 가르침)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신참자는 이러한 입문 의례를 치른 후에 비밀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비밀 의례의 내용과 그들의 경험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동굴이나 외진 야외에서 밤에 의례가 치렀다.

디오니소스 제의의 참여자들은 그 시대의 억압받는 여자들이 많았고, 오르페우스교는 신통기의 저자, 금욕주의자, 환영을 보는자, 오르페우스교 입문자들, 주술사들, 점쟁이들, 정화 의례를 행사는 자들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르페우스를 신봉하는 민중 종교였다. 공적 제의를 중요시하는 국가나 권력을 잡은 세력들은 그들의 비밀스러운 종교 체험이 주류의 생활양식과 가치 질서를 위협한다고 여겼다. 그들을 잠재적인 반역 세력으로 억압하고 핍박했다. 소아시아에서 들어온 이국의 신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종교와 불화를 겪었다.

 

신비 종교의 두 가지: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테베의 공주 세멜레와 제우스의 아들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계략으로 세멜레가 죽게 되자 제우스는 뱃속에 있던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허벅지에 꿰메 넣고 기른다. 그래서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그는 두 번 태어난 자가 되었다. 디오니소스의 고유한 존재 양식에 내재한 역설은 죽어야 하는 존재인 인간에게서 태어나 불멸의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 전통의 디오니소스-자그레우스의 신화에서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다스렸던 거인 티탄들이 신비한 장난감을 가지고 아기 디오니소스를 꾀어내어 몸을 찢고 솥에 삶은 후 굽는다. 해체되고 익혀져진 후 자그레우스(위대한 사냥꾼)로 다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세 번 태어난 존재가 된다. 신체의 해체와 삶기 혹은 불 통과하기는 샤먼적 입문 의례의 특징이다.

오르페우스교는 전설적인 시인 오르페우스를 트리키아의 역사적인 인물로, “호메로스의 조상에 위치시킨다. BC 6세기, 5세기의 문헌에 따르면 그는 샤먼들처럼 치료하는 자이고 음악가이고 야생동물들을 매혹 시키고 다스린다. 죽은 자(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지하 세계로 가고, 디오니소스의 여사제들인 마이나데스에서 찢겨 흩뿌려지고, 헤브론 강에 던져져서 노래를 부르면서 떠내려가던 그의 머리는 무사이에 의해 정성껏 복구되어, 신탁을 내리는데 사용되었다.

찢김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정복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는 샤먼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면서 신비 종교를 대표하게 된다.

 

디오니소스적 구원

시칠리아의 디오도로스는 오르페우스를 디오니소스 비의의 개혁자로 묘사한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에 속하는 입문 의례가 오르페우스 종교에 속하게 되었고 BC5세기부터 디오니소스 비의는 오르페우스교의요소를 차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당시에 오르페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예언자혹은 모든 입문 의례의 창설자로 불리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두 비의는 공유하는 것이 있지만 구원의 방법에서는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디오니소스의 의례 티아소이는 밤중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이나 숲속에서 거행된다. 비의는 고대의 의례 행동 양식인 야만적인 음악, 열광적인 북춤, 환각 식물을 통해서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엑스터시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초월하는 것이며, 완전한 해방을 발견하는 것이며, 보통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유와 자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윤리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금지나 규제,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한다. 이것은 수많은 여성들이 그 제의에 참가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의 체험은 보다 깊은 차원을 건드린다. 의례는 살아 있는 희생 제물을 갈기갈기 잘라서(sparagmos) 날로 먹는 것(omophagya)으로 신과 소통하게 된다. 찢겨서 먹히는 동물은 디오니소스의 현현 혹은 화신이기 때문이다. 의례의 모든 경험들-경이로운 육체적인 힘, 불과 무기에도 다치지 않는 것, “기적들”, 뱀이나 야수의 새끼와의 친밀성”-은 열광(enthousiasmos), 즉 신과 동일화에 의해 가능해진다. 날고기를 먹는 여신도들은 수만 년 동안에 걸쳐 억압되어 온 행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문명의 옷을 벗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시원의 완전성과 총체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광란은 신적인 빙의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력과 우주적 힘의 합일을 드러낸다. 우리가 그러한 향연의 신성함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디오니소스의 비의에 입회함으로써 약속된 내세의 지복을 기대했다.

오르페우스교의 구원

오르페우스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아폴론과 디오니소스가 결합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폴론이 좋아하는 자였지만, 동시에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그리스로 도입했고, 그에게 올리는 희생 제의와 남근 행렬을 들여온 인물이 바로 오르페우스다. 술과 열정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와 태양과 이성을 상징하는 아폴론은 원래 적대적이었다. 오르페우스를 통해 적대적이었던 두 신이 화해하면서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 신들 사이에 받아들여졌다.

오르페우스교도들은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영혼의 불멸과 그로 말미암은 영혼의 신성성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비밀 의례에서 행해지는 오르기아(열광)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폴론이 가르친 정화의 기법인 카타르시스로 대체되었다. 이를 엘리아데는 오르페우스교 비의 창시자들이 윤회와 영혼의 불멸을 중시했기 때문에 디오니소스 입문 의례로부터 영감을 받으면서도 보다 적절한 입문 규율을 제안한 것이라 한다.

티탄의 재가 갓난아기인 디오니소스의 몸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티탄적인 본성과 신성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화와 입문 의례와 오르페우스교도적인 삶을 통해 티탄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있으며, 디오니소스적인 신적 조건을 얻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도 불멸을 획득하게 된다.

오르페우스교는 최초의 범죄에 대한 처벌로서 영혼은 마치 무덤(sema) 안에 갇히는 것처럼 몸(soma)에 갇히게 되었다고 본다. 오르페우스교도들은 몸속에 갇힌 죄수를 정화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과 금욕으로 욕망을 제어하고, 비밀 의례에 참여하여 정화와 입문을 반복함으로써 구원을 얻고, 윤회에서 벗어나 최종적 해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은 1차적으로 입문 의례”, 우주적이고 신지학적인 계시들(영혼의 신적 기원과 구원에 대한 계시)에 의해 이루어진다.

 

합일과 지복(至福)

모든 보편종교 안에 신비주의 분파가 존재한다. 신비주의 분파에는 고대의 종교적 원형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카발라, 이슬람의 수피즘, 힌두교의 탄트리즘, 불교의 밀교 등. 이는 제도화된 종교가 담지 못하는, 신과의 합일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려는 욕망이 인간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신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세계와의 합일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하나 될 수 있을까?

오르페우스식 구원은 익숙한 이원론적 구원이다. 몸은 부정당하고 불멸하는 영혼의 해방을 추구한다. 오늘날 일신교에서 추구하는 구원과 닮아있다. 디오니소스식 구원에는 외부가 없다. 몸이 부정되지 않고, 몸으로 신과의 합일을 경험하고, 세계와 하나가 된다. 그러한 상태가 지복이리라.

디오니소스 비의 참가자들은 열광과 엑스터시를 통해 신과의 합일에 이르렀지만 지금 우리가 일상으로 신비체험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신비체험 없이 일상적으로 세계와 하나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세계와 분리된 에고가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것을. 그런 기억들이 몸의 차원에서 경험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지복도 경험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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