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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사상사2] 19장 붓다의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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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완 작성일25-07-22 14:43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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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회귀의 공포로부터 언어를 넘어선 지복으로

 

  155. 독화살에 맞은 사나이...... 

 붓다는 철학적인 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가르침에 어떤 체계적인 구조를 부여하지 않았다.

 붓다는 상키야학파 학자들의 이론적인 분석과 요가 수행자들의 명상 기법을 빌려 발전시켰지만 그들의 이론적인 전제들, 그중에서도 자기(purusa)라는 개념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사변에 몰입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였다. 독화살을 맞은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성스러움에 도달하는데 필요하지 않음을 설명하였다. 누가 쏘았는지, 왜 쏘았는지, 화살이 어떤 종류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스럽고 정신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마음의 평안, 깊은 통찰, 깨달음, 열반에 이르는 삶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156. "사성체"와 "중도"

 "사성체"에는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진리는 모든 것이 고통-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음도 고통이라는 것이다. 보통 "고통"이나 "고"로 번역되는 둑카(dukkha)는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행복의 다양한 형태, 명상에 의해 얻어지는 영적인 상태조차도 둑카의 하나이다. 영원하지 않으며 변하기 쉬운 것, 둑카인 것이다.

 두 번째 진리는 전생(윤회)은 결정하는 욕망, 욕구, 갈망이 고통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진리는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은 욕구를 버리는 것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진리이다. 그것은 열반에 해당한다. 사실 열반은 "갈망의 소멸"이라고도 불린다.

 최후의 네 번쨰 진리는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도"라 불리는 방법으로 존재의 고통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주의력, 바른 정신 통일로 구성된 팔정도를 통해 중도에 이른다.

 

  157. 만물의 비연속성과 아나타의 교리

 사성체 가운데 처음 두 진리-고통과 고통의 기원-에 대해 명상함으로써 수행자는 만물의 비영원성, 나아가 비실체성(팔리어로 anatta)과 함께 자기 존재의 비실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가 만물 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만물과 존재 양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붓다가 환원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는 자기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그가 아트만에 대한 신앙이 끝없는 형이상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지식에 대한 자기 우월감을 조장하며 결국에는 깨달음을 얻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와 "열반의 본질"에 관한 끝없는 논쟁은 깨달음(각성)의 체험 안에서 해결의 길이 있다. 그것은 사유 혹은 언어화의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158. 열반에 이르는 길

 붓다는 분명한 열반의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열반의 본질이 무엇이든 붓다가 가르친 방법은 요가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수 세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일련의 명상과 집중을 포함하고 있으나 붓다의 종교적 정신에 의해 발전되고 재해석된 요가라 할 수 있다.

 수행자는 먼저 그때까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실행해온 모든 행위를 자각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열반에 이르는 방밥은 책 140~141페이지에 설명되어 있으나 원전을 인용하거나 그것들을 잘 주석함으로써 요가 훈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159. 명상의 기법과 "지혜'에 의한 조명

 명상은 스승의 지도 아래 실천함으로써 그것의 구조와 기능을 밝힐 수 있다. 몇가지 본질적인 점을 언급하면

(1) 요가 훈련을 인도하는 것을 "지혜"이다. 비구가 경험한 심리적 혹은 초심리적 상태에 대한 완전한 이해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리적 활동을 자가하고자 하는 노력은 세속적인 의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상태를 수행자에게 계시하는 수행으로 이어진다.

(2) 요가의 경험이 이해 가능하게 되면 이어서 통상적인 의식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수행자는 계시받지 않은 의식의 구조 자체와 연결된 오류들(인격의 실재성과 물질의 통일성 등)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초일상적 체험에 의해 관념의 체계를 뛰어넘는 이해에 도달하지만, 그러한 이해를 언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수행자는 실천을 거듭해감에 따라 열반의 명확한 실재성을 새롭게 재확인하게 된다. 

 붓다의 가장 큰 공헌은 명상의 방법을 명확히 제시하고, 고행위 실천과 요가의 기법을 특별한 이해과정에 통합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붓다가 요가 방식의 고행-명상과 교의의 이해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인정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붓다가 밝혀준 모든 진실은 요가적 방법에 의해 "실현되어야"하는 것, 다시 말해 명상되고 "경험되어야"하는 것이다.

 

  160. 조건을 벗어난 자의 역설

 "열반에 들어간"상태가 완전한 소멸인지, 아니면 사후의 지복 상태를 의미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열반이 전혀 조건지어지지 않는 것, 절대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우주의 구조뿐만 아니라 인식의 범주까지도 초월한 것이 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열반에 들어간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 그는 열반 안에서, 조건지어지지 않는 것 안에서, 나아가 상상할 수 없는 상태 안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열반과 우주의 소멸 사이의 등가성이 깨진 알, 집의 파괴, 부서진 지붕 등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조건지어진 세계 전체의 소멸을 표현한다. 우주-집-인체의 상동성을 인정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안정된 거주지에 자기 거처를 정한다"는 고대적인 이상에 대해 모든 조건지어진 것의 소멸과 초월이라는 이상의 대립을 붓다는 제기한다. 그러한 혁명적인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자신이 "고대부터의 길",  시대를 초월한 교의를 따르고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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