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사상사2] 4강 후기 - 고대 로마 종교성의 특징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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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헤미안 작성일25-08-24 15:28 조회26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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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류학 제20장 후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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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종교성의 특징들에 관하여
(세계종교사상사2, 제20장 로마의 종교:기원에서부터 바쿠스제에 대한 박해까지)
신화를 역사화하다
로마의 종교에 대해 엘리아데(세계종교사상사의 저자)는 로마의 종교가 신화를 역사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갔다고 보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역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은 로마의 원주민들과 인도-유럽인 정복자들이 연합하는(예: 사비니인들과의 화해) 동시에 인도-유럽 사회들 고유의 신화 형태에 따라 고대 로마의 종교가 재조직되어 역사화된 형태로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로마인의 종교가 비형이상학적인 성향과 현실주의적인 취향을 보여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모든 비정상적인 것들을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위기로 여겼기에 로마인들은 기이한 현상들에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들에 종교적인 가치를 부여하도록 하였으므로, 로마인들은 자연스레 우주적 삶과 역사를 드러내는 직접적인 실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종교적인 실체들이 고유하게 드러나는 것을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현하는 신들의 기능과 연결하여, 로마인들은 각 신들의 기능을 독자적인 “위격”으로 구별하였다. 그리고 그 각각에 있어 효과적인 의례가 어떤 것일까가 중요했기에 로마인들은 자연스레 실용주의와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로마인의 종교는 유기적인 집단(가족, 씨족, 조국 등)의 “신성화‘를 특징으로 하였다. 신성화로 인해 그들이 법에 부여한 특권이 다른 면에서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평가절하로 나타났다. 개별적 존재보다는 관계를 중요시하는 로마 종교의 사회적 성격을 표현하는 피에타스(pietas)라는 용어에는 의례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과 규범을 따르는 인간 존재간의 관계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나는 이 부분에서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팍스로마나를 추구하게 되는 의식과 관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규범의 중시, 개별자 보다는 통일성 강조), 한편으로는 로마처럼 관계를 중했던 중국사회와 비교해서 볼 거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관계를 중시했던 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정치체제가 나타났던 점).
에트루리아의 신화를 흡수하다
고대 로마의 왕정 계보에는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들이 등장하는데, 사료의 부족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 사회에 끼친 영향은 분명하고 강력하였다. 우주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로마의 도시와 건축물에 영향을 주었고, 종교적으로도 유피테르-마르스(전쟁, 농업)-퀴리누스(전쟁신, 사비니족에서 유래)라는 로마의 오래된 삼위신이 에트루리아의 지배하에서 유피테르-유노-미네르바로 대체되었다(그리스화). 유피테르만이 인도-유럽적 유산이며 유노와 미네르바의 결합은 에트루리아인의 작품이었다. 로마의 신들이 그리스 신들로 동화되는 과정에서도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의 전례를 모델로 삼았기에 유노-미네르바-넵툰이 헤라-아테나-포세이돈으로 변형되었다.
공화정 말기에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이 초자연적 인물들에 의해 전해진 책들을 소유하고 있었고(천둥번개의 책, 의례서들, 내장점에 관한 책 등등) 그것들을 비밀언어로 전수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장점에 대한 해석은 신-우주-인간에 대한 준거점들 간의 일치를 가정하고 있었다.(대우주-소우주의 상응 이론) 튜터께서는 로마에서뿐 아니라 물리적인 우주의 질서와 신성한 신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같다고 보는 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기본 입장이라고 했다. 덧붙여 희생제의 후 영혼이 신성해지고 죽음이라는 상황을 벗어나게 된다는 에트루리아인의 종말론에서는 심판 모티프가 없었다는 점이 기독교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는 점도 함께 짚어주셨다.
지중해 패권 장악 이후의 변화들
공화정 초기부터 로마에서는 그리스 신들이 빠른 속도로 동화되어 갔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부터는 신의 시원과 상관없이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으며 아시아의 신도 도입하였다. 1,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 로마가 지중해 세계에서 패권을 차지하게 되면서부터 개인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시민들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비밀조직에 속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로마 당국은 원로원의 허가 없이 제의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원로원이 자신들의 통제 하에 놓이지 않은 종교조직을 의심했던 행위가 이후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모델이 되었다.
인간정신의 전개 과정에서 신화와 이야기가 먼저인가 역사가 먼저인가라는 부분에서, 역사 이전에 인간에게 공유되어 온 정신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 저자의 관점이라고 하였다. 이 점에 있어 엘리아데의 생각이 레비스트로스와 칼 구스타프 융과 교점이 있다고 짚어주신 부분을 앞으로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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