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사상사2] 23장 불교의 역사: 마하카사파에서 나가르주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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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완 작성일25-08-26 13:21 조회8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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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종교.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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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에 의해 풍부해진 사상
185. 불교의 최초의 분열
붓다의 입멸 후 불전의 결집을 위한 회합이 라자그르하 부근 동굴에서 7개월간 계속되었다. 대부분의 자료가 마하카샤파의 물음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아난다가 가르침을 자세히 구술하여 수트라(경전)의 주요 부분이 구성되었다. 계율의 바구니, 즉 비니야를 구성하는 텍스트들을 전해준 것은 또 다른 제자 우팔리였다.
이후 견해의 불일치가 심화되어 공동체는 대중부와 상좌부로 나뉘었다.
186.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아소카 왕에 이르는 시대
공동체의 최초의 분열은 결정적이고 전형적인 것이었다. 분열 후의 4반세기 동안, 중요한 두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이었고 다른 하나는 찬드라굽타의 마우리아 왕조 수립이었다. 헬레니즘 문화와의 접촉으로 인도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BC 3세기 초엽에 상좌부의 일파에 의해 개종한 바치푸트라라는 브라만이 윤회를 통한 인격의 연속이라는 교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소카 왕 치세동안 상좌부는 새로운 분열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존재한다(sarvam asti)” 는 이론, 즉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둘러싼 분열이었다. 그러한 이론을 제기한 개혁자들은 사르바스티바딘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왕이 그들에게 적대적이라 그들은 카슈미르 지방으로 피했고, 그 결과 불교가 히말라야 지방으로 전파되었다.
불교사에서 최대의 사건은 아소카 왕의 개종이었다. 그는 형을 죽여 왕위를 뺴앗았고, 전쟁에서 많은 적을 죽이고 포로로 삼았다. 그러나 개종 이후 불교에 깊이 귀의하면서 대단히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가 공언한 다르마(법)은 불교적인 동시에 브라만교적이었다. 왕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박트리아(현재 파키스탄 북부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른 지역)와 소그디아나(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지역), 스리랑카에 사자를 파견했다. 이후 여러 세기 동안 포교가 계속되어 캬슈미르 지방에서부터 이란 동부까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더 나아가 벵골 지방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기원후의 처음 수 세기 동안에 인도차이나, 말레이반도에도 전파되었다.
아소카 왕의 구세주 신앙과 법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에 의해 불교는 세계 종교가 되었으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보편적 구원 종교가 되었다.
187. 교리상의 대립과 새로운 통합
불교는 인도의 다른 종교운동과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가치관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통합해왔다는 의미에서 ‘혼합주의적’이었다. 붓다는 인도적 유산, 다시 말해 업과 윤회에 관한 교리, 요가의 기법과 브라만적 혹은 상키야적 분석뿐 아니라 범인도적 이미지, 상징, 신화적 주제들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따라서 무수한 천계 혹은 지옥, 그리고 그곳의 거주자에 관한 전통적인 우주론이 붓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불교 안에 수용되었다.
스투파는 붓다나 성인의 유골, 혹은 성물을 담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마도 화장한 뒤의 재를 묻는 무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스투파 주변의 테라스 가운데에는 원형의 지붕을 가진 기둥이 솟아 있고, 그 주변에는 의례를 위한 회랑이 마련되어 있다. 차이티아는 많은 기둥을 보유한 성소로서 입구와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에는 작은 방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곳에 경전이 저장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차이티아는 사원에 가까운 것으로 변했고, 결국에는 소실되었다. 땅바닥에 엎드리는 예배나, 의례적 인사, 탑돌이, 꽃과 향로 및 해를 가리는 우산을 바치는 것이 의례의 주요 부분이었다.
여러 세기동안 석존은 족적, 나무, 바퀴 등 도상적 형태로 표현되고 숭배되었다. 이러한 상징들은 붓다가 설법을 행한 족적, 깨달음을 얻은 나무, “법의 바퀴를 굴린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AD 1세기경, 최초의 불상(그리스-인도 혼합 양식의 간다라 조각)이 만들어졌는데 붓다의 상은 베다 종교의 제단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가치관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붓다의 머리주변에서 빛나는 공배(1~5세기의 기독교 미술에서도 발견된다)는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후라 마즈다의 빛나는 광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188. 보살도
대승불교의 출현은 BC 1세기 말에 반야바라밀다계 경전들에 처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길을 “보살도” 라고 불렀다. 대승의 이상은 열반을 추구하는 고독한 아라한이 아니라 보살이었다. 보살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다른 신도들에게 자비의 모범이 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의 해탈을 무기한 연기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종교적인 영웅은 힌두교의 라마나 크리슈나와 닮았다.
이러한 구제론은 대승불교가 새롭게 제시한 근본적인 철학은 “일체공”의 사상이다. “사물”과 다르마 그 자체가 실재를 가지지 않으며 실존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현실”의 세계를 공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이 세계로부터의 해탈과 자기 소멸을 용이하게 만든다.
189. 나가르주나와 일체공의 교리
나가르주나는 일체공의 교리가 하나의 “철학”이라는 관점을 부정했다. 일체공이라는 교리는 구도자로 하여금 속세뿐 아니라 구원에 대해서도 이론적인 구축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동요되지 않는 평정과 자유를 획득하게 만드는, 변증법적인 동시에 명상적인 실천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 혹은 느껴질 수 있고 생각되거나 상상될 수 있는 모든 것이 공, 즉 비실재라는 것을 논증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과가 뒤따른다. 첫째, 원시 불교의 모든 사유 방식과 아비달마 논자들에 의해 제시된 체계적 재정의가 모두 허위임이 드러난다. 둘째, 나가르주나는 “사로잡혀 있는 자”와 “해탈한 자” 사이의 구별을 부정한다. 그 결과 윤회와 열반의 구별조차 부정한다. 열반도 “정신의 구성물”이다.마지막으로 일체공의 세 번째 결과는 인간의 정신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존재론 중의 하나의 기반을 구축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공 또는 열반 의 근거가 되는 “절대적 본질”이 존재한다고 추론해서는 안된다. 공은 파악될 수도 식별될 수도 없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그러한 속성을 가진 "초월적 시재"가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궁극적 진리에 의해 베단타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것”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진리는 존재의 양태에 불과하다. 그거은 구도자가 "사물"과 그것의 정지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없애는 순간 발견되는 것이다. 사유에 의해 공을 실현하는 것은 해탈과 동일한 것이다.
190. 마하비라 이후의 자이나교: 학문, 우주론 구원론
바드라바후(상좌부들 중 하나로 BC 3세기의 인물)는 자이나교의 정전을 확립하였다. 그는 자이나교의 분열을 초래한 위기를 목격한 인물이었며, 아마도 그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을 것이다. 바드라바후가 이끌고 데칸 고원으로 이주한 자들은 나체 편력을 계속하다가 마가다 왕국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 남아 있던 수행자들이 사치스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후 여러 세대에 걸친 대립이 계속되었고, 그것은 결국 의례의 세부 사항에 관한 논쟁과 교리상의 차이에 의해 격화되었다. BC 77년 교단은 백의파와 공의파로 분열되었다.
불교와 달리 자이나교는 최초의 구조를 그대로 보존했다. 경전 성립 이후에 만들어진 철학과 의례에 관한 문헌 안에서는 새로운 사상이나 창조적인 사상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바드라바후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구제론이다. 중심이 되는 정견, 정지, 정행중 정지에는 다섯 단계가 있는데 그 중 자이나교에 전형적인 두 가지를 살펴보면, 하나는 관점의 교리이고 다른 하나는 불확정의 교리이다. 관점의 교리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 그것을 보완하는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한 시점에서 보면 타당한 것이라도 다른 시점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게 되지만, 논술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불확정의 교리는 실재가 상대적이며 다의적이라는 주장이다. 그 교리는 일곱 개의 논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7구 표시법"이라고도 불린다.
자이나교의 우주론의 독창성은 그것의 원초적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자이나교는 힌두교나 불교의 우주론이 지나쳐버렸던 인도의 전통적인 관념을 보존하면서 그것을 재평가했다. 우주는 팔을 구부려 손을 허리에 대고 서 있는 거대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거인은 저차원의 세계(다리), 중간 세계(허리), 그리고 고차원의 세계(가슴과 머리)로 구성되어 있다. 수직으로 지상에 드리워진 줄은 마치 세계축처럼 우주의 세 영역을 연결한다. 우주를 인체의 형태로 파악하고 그 인체의 여러 부위ㅡ우주적 인간의 여러 기관에 동일시된다ㅡ에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원초적인 사유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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