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류학 에세이] 우리는 여전히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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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완 작성일25-06-23 23:05 조회7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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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사상사1」에세이 2025. 6.24 박지완
우리는 여전히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 안의 신성을 찾아 떠났던 첫 여정에서 나는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어 멀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두 팔이 자유로운 직립보행을 하게 된 초기 인류는 두 발로 걷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들이 도구를 만들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이동하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두 번째 여정을 함께할 참고 도서는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쓴 세계종교사상사 1권으로 석기시대부터 엘레우시스의 비의까지를 다룬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구석기 시대에서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와 가나안, 인도와 이란까지의 초기 문명지를 둘러보며 종교와 사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화석화되지 않는 유물을 다른 여러가지 고고학적 자료를 참고해 알아본다.
“ 우리가 여러 차례 되풀이 하여 말한 것처럼, 신앙과 사상은 화석화될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부 학자들은 구석기인들의 신앙과 사상을 수렵문명과 비교함으로써 재구설하기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방법론적 입장은 나름대로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인류 정신사의 거대한 부분을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은 그 기간동안에 이루어진 인간의
정신 활동이 단지 기술의 보존과 전달에 국한되어 있다는 생각을 조장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한 견해는 단순한 오류에 그치지 않고, 인간 정신에
치명적인 오해로 연결된다. 도구를 만드는 인간은 곧 놀이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 그리고 종교적인 인간인 것이다. ” (29쪽)
문자로 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초기 인류에게 신앙과 사상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엘리아데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말하는 듯 하다.
기술(문자로 남겨진 자료가 없어도)의 발전을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다양한 신화와 믿음 속에 남겨진 실마리를 통해 인류의
정신사를 따라가보는 책이었다.
인류가 죽음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의 변천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무수한 관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매장은 아주 오래된 문화이다. 저자인 엘리아데는 구석기시대 후기에는 매장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시체에는 적색토가 뿌려져 있고 상당량의 장신구가
함꼐 발견되는데 이러한 유물은 인간의 사후의 삶에 대한 신앙과 죽은 자의 특별한 활동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고 한다. 신체와 분리된 영혼이 있다는 믿음
이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이 오래되었다는 것이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 천년동
안 이어진 뿌리가 깊다는 것과 동서양의 동일한 믿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 원초적 종교사상의 중요성은 먼 후대까지 살아남는 그 생명력을 통해 확인된다. 그 중에서도 생명이 뼈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신앙은 상당수의 문화 속
에서 지속되고 있다. 동물의 살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남은 뼈를 부수어버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수렵민이나 목축민
의 문명에 고유한 사상이지만, 더욱 복합적인 종교와 신화 속에서도 존속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가 토르 신의 염소이다. 그 염소들은 저녁
에는 목이 잘려 잡아먹히지만,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토르 신은 남겨진 뼈를 가지고 죽은 염소들을 되살려낸다. " (40쪽)
농경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재생의 믿음이 더욱 의미를 가지게 된다. 식물의 주기적인 변화를 경험하면서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생의 신비에 자극받기 때문
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농경문화의 종교적 활동은 세계의 주기적 갱신이라는 중심적 신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소위 우주적 종교라고 명명할 수 있
는 체계를 발전시켰고 곡물 재배의 전파는 독특한 의례, 신화 그리고 종교적 관념들을 확산시켰다.
" 우주는 주기적으로 다시 말해 매년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된다. 세계는 정기적으로 새롭게 갱신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주 창조는
새 해가 시작될 때 의례적으로 되풀이된다. 이러한 신화-의례적 시나리오는 근동 지역과 인도-이란 지역에서 발견된다. " (76 page)
이러한 시나리오는 불교의 윤회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베다 시대 이후의 인도에서 이 관념이 서로 연관된 두 개의 이론, 즉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적 주
기와 영혼의 윤회라는 이론으로 다듬어졌다고 설명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에 이르면 신화에서 신들은 세대교체를 하며, 신들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신전을 건축한다.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대홍수 테마와 죽은 자를 데리러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테마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들에서 모든 창조(생식)에는 죽음이 뒤따른다는 관념이 깔려 있다. 불사
를 찾아 떠난 길가메시가 불사의 식물을 찾아내고도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어떤 영웅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반복된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운명임을 받아들이는데에는 신화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신화의
주인공은 더이상 신이 아니라 신의 불사에 도전하는 인간 영웅이다. 인간 조건의 한계를 받아들임의 한편에 좌절된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신비를 사색함으로써 이집트 문명은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무덤과 신전을 후대에 남겼다. 사후의 삶과 관련된 이집트인들의 신앙에서 죽은 자가
거주하는 장소는 지하 또는 하늘 어딘가에, 별들 사이에 있다. 죽음은 무의미한 현실에서 벗어나 유의미한 영원의 장소로 가는 여정이다. 죽은 자는 재판과
영혼의 측정을 거친다고 여겼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사후의 삶을 결정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의 기도는 사냥의 성공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
다. 죽음에 대한 오랜 관념을 영혼의 변화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삶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살아갔다.
오랜 시간동안 죽음은 풀 수 없는 신비로 남아있으나 인류 전체가 공통적으로 믿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살기 원하며 영생을 원하듯
영혼이 계속 살아가는 사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구석기에는 매장을 통해 뼈가 남아 있으면, 이집트에서는 시체를 썪지 않게 방부처리하고 사후에 똑같이
살 수 있도록 부장품을 함께 매장함으로써 사후의 삶에 대한 맏음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을 역사와 함께 읽어가며 정리하다보니 성경에서 예수의 부활과 심판의 날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색다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의 믿음 위에 부족이 있고 그 부족이 이동하거나 새 도시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믿음으로 변화하지만 현재의 대도시 안의 믿음의 이
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오래된 과거에 만들어낸 이야기를 믿고 그 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나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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