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사상사1] 에세이-야훼, 이스라엘 생존의 유일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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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켜니 작성일25-06-24 17:54 조회5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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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사상사1』 에세이/25.6.24/최옥현
야훼, 이스라엘 생존의 유일한 가능성
초등학교 6년의 일요일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언니와 함께 교회를 다녔다. 친정엄마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는데 돈벌이 때문에 생긴 자신의 부재를 대신해서 딸들이 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여가를 즐기기를 원하셨다. 뒤죽박죽 엉망으로 엉켜있던 성경의 이야기를 역사적 맥락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종교 인류학 시간이 즐겁다. 교회에 출석은 했지만 야훼 하느님은 유일신의 구조 때문인지 불편한 마음을 유발하는 신이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주변 지역의 신들과 야훼의 동화와 경쟁 관계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야훼는 민족 신중의 하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어떤 필요 때문에 유일신을 선택했다.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이동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월 일본 답사에서 보니 일본 불교 사찰 안에 신도 사찰이 같이 있던지, 불교 사찰 바로 옆에 신도 사찰이 있었다. 구카이 스님의 어머니를 모시는 ‘지손인’이라는 절 위에 신도 사찰이 바로 있었는데 그 신도 사찰에서는 지역 연고의 신뿐 아니라 구카이 스님을 고야산으로 이끈 흑백 두 마리의 개를 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구카이 스님이라는 같은 소재를 불교와 신도가 함께 공유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옆집이 잘되니 그 집을 모방하는 것이다. 야훼 신앙도 주변 지역 신들을 계속 모방하면서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도 다신교 사회이었는데 일신교의 문화가 빨리 퍼질 수 있었던 역사적이고 문화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카톨릭적인 또는 기독교적인 하느님은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존재이다. 우리나라에는 역사와 문화 현상으로서 유일신 하느님을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많이 존재하는 듯하다.
메소포타미아 신화 전승을 받아들임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아브라함은 칼데아의 우르를 떠나 메소포타미아의 서북쪽에 있는 하란에 도착했다. 그 후 그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잠시 세켐에 머물렀으나, 다시 무리를 이끌고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사이를 이동했다. 족장 시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모험담으로 구성된다. 전설적인 인물이라 여겨지는 족장들은 메소포타미아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신화 전승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수용했다. 족장들의 종교는 ‘아버지의 하느님’에 대한 숭배를 특징으로 한다.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는 ‘내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유사한 정형구들이 있었다. 하느님은 조상들에게 나타남으로써 일종의 혈연관계인 존재가 된다.
가나안의 엘 신앙과 동화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족장들은 엘 신앙에 직면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하느님’은 결국 엘 신과 동화되었다. 엘과의 동화를 통해 가족이나 씨족의 신으로서는 확보할 수 없었던 우주적 양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족장 이야기에는 엘이라는 존재를 나타내는 실체 명사로 구성된 이름들을 언급된다. 엘 로이 EL Roi ‘나를 보시는 하느님’, 엘 샤다이 El Shaddai ‘산의 하느님’, 엘 올람 El ‘Olam ‘영원하신 하느님’이 그 예이다. 이것은 족장 시대의 유산을 풍부하게 만드는 새로운 종교적 종합이 성공을 거둔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가나안 신앙과의 종합의 사례는 이것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종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 가지 의례는 계약의 희생 제의와 이삭의 희생이다. 전자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지시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 암소와 암염소, 숫양을 두 토막으로 가르는 의례로서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도(예, 히타이트 민족) 그와 유사한 의례가 발견된다. 이삭의 희생 제의에서는 ‘번제holocaust’라는 용어가 여섯 번 반복되고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희생 제의는 이스라엘 부족이 최종적으로 정착한 후에 가나안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전의 두 번째 파괴와 국가의 소멸 후에도 이삭의 번제를 허락한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해 자신들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부딪친 숱한 시련을 견딜 수 있었다.
자연 숭배적 축제와 역사적 사건의 융합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은 모세가 이끄는 집단의 탈출처럼 보이지만 모든 이스라엘 부족들의 성스러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에피소드가 된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유월절 축제를 야훼 신앙의 ‘성스러운 역사’ 안에 통합한다. 유월절 축제는 이집트 탈출 역사와 함께 변형된다. 우주적 형태를 가진 종교 구조가 성스러운 역사적 사건으로 변형되는 것은 야훼 신앙의 일신교적 특징이다.
신이 특정한 인간을 선택
실제로 족장들의 ‘아버지의 하느님’과 모세에게 나타난 하느님 사이에는 일정한 연속성이 보인다. 야훼 신앙은 목축민의 환경 속에서 등장하여 사막에서 발전했다. 순수한 야훼 신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막이라는 환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예언자들의 유목적 이상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야훼는 특정 장소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계속 장소를 옮기는 유목민의 특성 때문에 신을 특정 장소와 연결하지 않은 것 같다. 또 야훼는 한 집단의 지도자인 모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야훼에게 온화와 자비를 가르친 엘
모세 시대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의 하느님’이 이름이 없었다면 야훼는 그의 신비성과 초월성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고유명사이다. 신과 그 신을 숭배하는 자 사이의 관계가 변화하고, 사람들은 이제 ‘아버지의 하느님’이 아니라 ‘야훼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에서 이미 나타나 있는 선민사상이 더욱 명확해진다. 이 부분도 엘 신앙과 동화되는 부분이다. 야훼는 엘로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물려받았고, 원래 사납고 폭력적인 신이었던 야훼에게 엘 신은 온화함과 자비로움을 물려주었다. 야훼 신앙은 엘의 종교로부터, 신의 아들로 구성되는 신의 궁정이라는 관념을 취하게 되었다.
십계명의 다른 의미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인 ‘너희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에서 나타나는 것은 야훼주의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유일신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계명에서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한다것이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인 ‘너희는 어떤 것의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는 것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계율은 제의의 도구로 야훼를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야훼는 ‘형태’를 가지지 않으며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근동의 다른 신들이 인간이나 동물 또는 자연물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야훼는 인간의 모습으로만 인식되었다.
야훼와 바알이 혼동됨
모세가 이끌었던 집단이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가나안에 들어갔던 BC 1200년부터 사울이 왕위에 오른 BC 1020년 사이의 시기를 사사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유목민들 사이의 신성한 법칙으로 인정되었던 ‘환대’에 관한 원칙은 야엘의 배신행위에 의해 깨지고 만다. 그리고 모세 시절에 사용되었던 이동 성소가 폐지되고 제의는 성소와 성지에서 올려지게 된다.
이때부터 BC 7세기까지 가나안 종교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놀라운 것은 사사 시대 동안에 야훼와 바알이 혼동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바알, 즉 ‘주’라는 단어가 야훼를 형용하는 명칭으로 이해되었거나, 바알이 야훼와 나란히 숭배되었을 것이다. 바알은 농지의 신, 풍요를 가져다주는 전문적인 신으로 이해되었다. 바알에 대한 제의가 배척되고 배교의 전형이 된 것은 후대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언자의 뿌리는 바알 제의의 나빔
가나안의 희생 제의 체계는 야훼 신앙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은 농경 관련 관습뿐 아니라 오르지적인 의례까지도 받아들인다. 신전들 역시 가나안의 모델에 따라 만들어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엑스터시 체험을 하는 예언의 뿌리가 가나안 종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바알의 제의에는 나빔(예언자들)이 참가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처럼 비교적 짧은 신탁의 문구를 사용하여 왕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왕에게 불리한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의례의 구조, 성소과 성지, 사제 계급은 가나안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사제의 우위 및 농경의례의 혼합주의에 대항하여 반발하는 에언자의 존재조차 가나안의 영향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예언자들이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야훼 신앙은 그들이 통렬히 비난했던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의 가장 창조적인 요소들과의 동화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왕권 제도와 야훼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여호수와와 함께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작은 지역을 다스리는 사사(裁判官)에 의해 다스려졌다. 사사는 군사적 지도자이면서 종교적 재판관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 외국 제도였던 왕권 제도를 야훼와 결합시킨다. 왕은 하느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야훼에게 선택을 받은 것이고, 특별한 선언에 의해 적법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왕은 야훼의 대리자이며 따라서 왕은 신성한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야훼는 유일신이기 때문에 왕은 신격화될 수 없으며 왕은 야훼의 종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외래의 제도를 성스러운 역사의 새로운 행위로서 가치 부여하였다.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의 왕궁 가까이에 신전이 세워지고, 신전이 세워진 시나이산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
이스라엘 왕정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사상과 실천을 융합했고 이스라엘의 왕들은 자신들을 국가 종교의 수장이라고 생각했다. 다윗과 솔로몬이 제사장처럼 행동하는 흔적들이 보이고, 의례에서는 신년 축제(천지창조의 상징적 재현)와 왕의 ‘죽음과 부활’이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의 위계 상승
야훼는 살아 있는 하느님이다. 인간 역시 살아 있는 존재인데 하느님이 ‘숨’ 또는 ‘영’을 불어 넣어주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영이고 인간은 육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지만 인간은 불확실하고 덧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며, 자연을 지배한다.
최초의 유일신 숭배자, 엘리야
엘리야는 아합 왕과 아하시야 왕 시대(BC 874-850)에 북왕국에 등장했다. 아합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하여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이세벨 왕비의 보호를 받던 바알 제의와의 종교적 융합을 장려했다. 엘리야는 야훼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주권자라고 선언한다. 비를 내리고 대지의 풍요를 보장하는 자는 바알이 아니라 야훼이다. 카르멜 산에서 3년간 계속되었던 가뭄을 종식시키기 위해 바알의 예언자들과 경쟁한 엘리야는 바알이 무력한 신임을 증명한다. 한 백성이 소유한 포도원을 얻기 위해 그를 살해한 아합 왕을 향해 엘리야는 왕이 잔인하게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축의 시대』 저자 카렌 암스트롱은 최초의 유일신 숭배자가 엘리야였다고 말한다.
호세아는 북왕국에서 설교했다. 그의 소명과 예언의 의미는 그의 결혼 생활과 관계가 있다. 호세아의 선포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기 백성의 배반에 대해 하느님이 느끼는 비통함이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아내였으나, 그 아내는 남편을 배신하고 창녀가 되었다. 야훼가 그녀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고, 바알 숭배를 위해 사용하는 은과 금을 주었는데 그녀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바알과 야훼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화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주적 구조를 가진 종교와 세상의 창조자이며 역사의 지배자인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맹세한 종교 사이의 대립이다. 호세아는 바알 신앙과 야훼 신앙의 종교적 융합에 대해 공격을 퍼붓는다.
신의 현현으로서의 역사
예언자들이 비난해 마지않는 제의와 종교적 혼합(간음)은 가장 일반적인 우주적 종교성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성질이 사물과 우주의 리듬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신앙이다. 예언자들은 결국 하느님의 현존을 자연계와 완전하게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전부가 가나안의 풍요신에게 바치는 제의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는 이유로 ‘불결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가장 정결하고 신성한 장소는 사막이었다. 유대인이 세운 두 왕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던 역사적 위기에 대한 예언자들의 대응책은 단호하고 전면적으로 우주적 종교성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즉, 자연의 탈성화와 제의 활동의 무가치화였다. 예언자들은 최초로 역사에 가치를 부여했다. 역사적 사건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그것은 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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