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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의 형이상학 (3)] 너에게 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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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숙 작성일26-07-08 14:31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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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3정령적 동맹은 레비-스트로스의 저서 오늘날의 토테미즘야생의 사유를 토대로 토테미즘희생에 대한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의 사유이다. 토테미즘과 희생은 식인 풍습과 샤머니즘과도 연결되지만, 나는 식인의 풍습에 부여된 타자성 개념에 더욱 관심이 갔다.

 

 

제물로부터 흡수한 것은 그의 타자성이라는 기호였고, 목표로 삼은 것은 자신에 대한 시점으 로서의 그 타자성이었다.(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트루, 박이대승·박수경 옮김, 식형이상학, 후마니타스, 2018, 175)

 

 

투피남바의 식인 풍습은 적대자를 포획하고 처형 후 의례에 따라 먹어 치우는 체계를 갖고 있는데 주로 같은 언어 집단에서 전쟁 포로를 잡아 온다. 포획자들은 오랜 시간을 포로와 함께 보낸다. 잡혀온 포로들은 매우 좋은 대우를 받으며 아내가 주어지기도 하는 등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감시속에 자유롭게(?) 살다가 처형 된다. 제의 참석자는 모두 포로와 함께 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포로의 신체를 먹어 치운다. 제의와 처형을 집전한 사람만이 포로를 먹지 않는다. 그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은둔 생활, 즉 추모 기간을 갖는데 이는 입문 의식을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171~172)

투피남바족의 식인 풍습에서 제물의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섭취 그 자체의 순수한 의미보다는 그 신체가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중요하다고 보이며, 저자는 그 신체를 하나의 기호, 순수한 위치값이라고 설명했다. 즉 적대자가 가진 조건으로서 적대자로부터 흡수한 것은 그의 타자성이라는 기호였고, 목표는 타자성이라는 그의 시점을 내 것으로 만들어 결국 그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이다.(175)

포로를 잡아 학대하고 폭력을 휘둘러 인간의 잔인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고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를 적대자가 아닌 로 또는 가족의 일원이자 존엄한 타자로 그의 위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 식인의 개념이다. 식인이라하면 사람도 먹어 치우는 잔인하고 미개한 풍습의 일종으로 배웠던 나로서는 이러한 철학적 관점이 매우 흥미롭다. 투피남바족은 적이 갖고 있던 훌륭한 영적·신체적 조건을 내가 먹음으로써 내것으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죽어 사라지지만 내 몸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다.

저자는 아라웨테 버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적대자의 시점을 물리기호학적으로포착하여 자기 서술의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 인류학으로서의 인간 섭취를 말한다.(176) 아마도 이것은 희생자를 섭취함으로써 그가 갖고 있는 물리적인 것, 즉 그의 시점 등을 내면화한다는 것이 아닐까? 희생자와 내가 같은 영혼을 갖고 있다는 관점으로 자신과 희생자를 통합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는 순간부터, 혹은 희생자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독특성을 자신에게 발음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을 주체로서 파악한다. 이것을 관점주의라고 저자는 설명한다.(같은쪽)

 

결론적으로 투피남바족이든 아라웨테인이든 그것이 누구의 버전이든 이들이 갖고 있던 포식의 모습은 그의 타자성흡수였고, 타자성은 곧 자신이었다. 상대의 육체를 먹음으로써 영혼을 먹는 것, 바로 타자와 나를 동일시 하는 이것, 너를 갖고자 너를 먹는 것이야말로 영혼의 이야기이며 'animism'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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