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정리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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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민 작성일25-06-03 21:57 조회36회 댓글0건본문
정리문②/ 수성/ 2025.06.04./ 김수민
순수지성 개념의 연역
요청된 순수지성 개념의 초월적 연역
이번에는 지성의 선험적 영역을 다루는 ‘초월적 논리학’ 그 중에서도 순수지성 인식의 요소들을 다루는 ‘초월적 분석학’을 살펴볼 것이다. 단 여기서 기억해야하는 것은 지성만을 다루지만 직관을 통해 대상들이 주어졌을 때에만 종합이 가능한 영역으로, 언제나 직관적 대상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순수지성 인식의 요소와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순수지성 요소는 바로 경험적이지 않은 순수한 개념으로 다른 개념들과 구분하기 위해 ‘범주(category)’로 표현한다. 이 범주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열두 가지 순수한 개념으로 서로 다른 대상들을 하나의 표상으로 종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직관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표상들을 열두 가지 판단표를 기준으로 하나로 인식(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할 때 범주가 필수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칸트의 주장일 뿐이다. 그래서 지성의 선험적 조건이자 논리적 형식인 범주가 인식하는데 있어 반드시 선행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그래야만 경험에서 불가능했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칸트의 초월철학 체계도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지성 개념인 범주의 권리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법적인 권리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연역’(deduction), 선험적 영역이 경험 대상과 관계를 맺는 ‘초월적 연역’이 요청된다. 즉 범주와 같은 주관적 조건들이 어떻게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 객관적 타당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범주들에 의해서만 하나의 대상이 사고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객관적 타당성은 정당화 된다.
초월적 연역의 첫 단계 세 겹의 종합
연역의 첫 단계인 세 겹의 종합을 따라가 보자. 지성은 직관을 통해 잡다들을 받아들이는 감성과 관계를 맺어야만 사고가 가능하다. 그래서 감성과 질적으로 다른 지성의 ‘관계맺음의 가능성’에 대해 먼저 탐구해야 한다. 이렇게 이질적인 인식의 관계맺음을 칸트는 ‘세 겹의 종합’이라고 말한다. ①직관에서의 포착(apprehension)의 종합, ②상상에서의 재생(reproduction)의 종합, ③개념에서의 인지(recognition)의 종합이 모든 인식에 있어 필수적이다. 이 세 가지의 종합이 주관의 세 원천인 감각기능, 상상력, 통각(지각의 통합)을 이끌고, 지성을 가능하게 하며,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이 종합이 연역의 첫 단계이다. 그러면 이제 각각의 종합을 살펴보자. 먼저 직관에서의 포착의 종합이다. 포성이 울리고, 건물이 무너지고, 지축이 흔들린다는 이런 표상에 시간을 부여하면서 하나로 이어지게 하는 것, 즉 구별된 잡다를 일별한 다음 ‘전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는 것이 경험적 포착의 종합이다. 그런데 이 종합에는 지나간 표상까지 떠올릴 수 있는 선험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재생 즉 상상력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세 차례의 포성이 울린 다음 건물이 무너졌는데 지나간 포성 소리를 떠올리는 연상의 법칙. 이것이 두 번째 상상에서의 재생의 종합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에는 현존하지 않는 표상을 자율적으로 재생하는 상상력의 초월적 능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재생의 종합에 있어 ‘하나의 동일한 의식’(통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령 포성소리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는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차이 대신 ‘십진법’이라는 공통의 개념으로 순서를 더해가야 도합 몇 번의 소리로 종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십진법이라는 개념이 유지되어 수를 셀 수 있으려면 의식은 전체를 형성할 때까지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이 ‘십진법’이라는 개념에 의한 수의 종합이 세 번째 개념에서의 인지의 종합이다. 이렇게 세 겹의 종합에서 ‘상상력’과 ‘통각’이 새롭게 도입되었으며, 이 선험적 토대들이 이질적인 감성과 지성의 매개를 돕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범주들에 의해서만 하나의 대상이 사고될 수 있음을 증명할 차례다. 앞에서 포성소리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를 다른 소리와 섞이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성의 한 범주인 인과(전쟁)라는 관계범주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적으로 다른 소리들을 양적인 관점으로 종합할 수 있었던 것은 범주의 양(십진법)범주가 동일한 규칙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처럼 경험적 질료들은 범주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잡다한 현상들로 난립하게 되어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리가 도합 몇 번(십진법)이라고 하든가, 이 모든 표상들이 전쟁(인과)이라는 개념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의 인식(판단)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범주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이자 범주가 있어야 인식이 가능한 필연적인 조건임이 증명된다.
추가 증명대상 상상력 그리고 통각
초판에서 경험적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 세 겹의 종합이 필요하고, 이종적인 감성과 지성을 매개하는 역할로 상상력과 통각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인식의 세 요소(감성, 상상력, 지성)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판에서는 이 상상력을 감성과 지성의 구조 아래에 위치시키고, 지성의 통제아래 직관 자료들을 종합하는 자발성으로 다시 규정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초판에서 미진했던 지성의 통일적인 원리인 ‘통각’(자기의식)을 재 정의한다. 즉 재판은 상상력, 그리고 통각에 대한 추가 증명이다.
먼저 매개로서의 상상력에 대해 살펴보자. 상상력은 현재 대상이 없음에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으로 자율성을 가진다. 그래서 직관과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지성과도 관계를 맺는 이중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 마음대로 활동한다면 종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범주의 통호를 받는데 이것이 증명되어야만 생산적인 상상력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범주의 지도 아래 상상력이 활동한다는 것을 증명하면, 범주가 직관과 만나고 있음이 증명된다. 직관적 예로 살펴보자. 창문, 지붕, 벽돌, 현관문을 차례로 본다고 가정하자. 이미 사라진 표상들을 결합해야 집이라는 개념이 형성된다. 이때 동질적인 것을 종합하는 ‘양의 범주’가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표상들을 ‘한 채의 집’으로 종합 한다. 이제 상상력은 범주의 통호아래 직관적 자료들을 종합하는 지성적 기능이 된다. 그리고 현상에 대해 인식하려는 우리의 지성은 범주를 통해 직관적 자료들에 객관적으로 입법함이 증명된다.
다음 통일로서의 통각이다. 초판에서는 통각이 하나의 의식으로서 종합되었다면, 재판에서는 통각을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통일성이라고 다시 규정한다. 그래서 ‘나’의 표상에 대해서는 언제나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만 종합된 잡다들의 통일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포성의 표상들을 생각하는 나와 건물붕괴의 표상들을 생각하는 나가 서로 다르다면 두 종류의 종합들을 통일할 수 없고, 전쟁이라는 개념도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포성의 표상들도 ‘나의 것’이고, 건물붕괴의 표상들도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전쟁’이라는 개념으로 통일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통각은 ‘자신의 것’이라는 표상을 낳으면서, 모든 의식에 동일자로 있는 그리고 표상을 가능하도록 전제하는 하나의 통일된 의식이다. 이 통각의 동일성이 바로 지성이자 지성의 역할이다.
객관적 타당성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우리의 인식 주관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선험적으로 지성의 범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식의 객관성을 확보해 준다는 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초월적 연역의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객관은 외부 대상을 뜻하는 게 아니다. 직관의 잡다가 범주에 의해 통합될 때 형성되는 그것이 바로 객관이다. 그래서 경험적 반복에 의해 연상되는 주관과는 구분된다. 이처럼 주어진 표상들을 통각과 범주에 의해 종합될 때에만 하나의 인식이 성립하는데, 이를 칸트는 “표상들의 객관적 타당성”(B137)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범주에 의해서 하나의 대상이 인식될 수 있음이 증명되면서 객관적 타당성은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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