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정리문②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산아래 작성일25-06-03 22:04 조회32회 댓글0건본문
지성의 자발성, 초월적 통각
초월적 분석학, ①개념의 분석학(연역론/종합-판단)
초월적 논리학은 감성과 지성을 분리해서 오직 지성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지성이라는 순수사고부문은 대상들이 우리에게 직관을 통해 주어진다는 조건에 의해서만 그 합법성이 인정된다. 왜냐하면 직관이 없으면 순수한 사고 자체는 공허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초월적 논리학은 경험적 대상에 적용될 수 있는 지성의 사고 규칙을 다루는 초월적 분석학과 그 경험의 한계를 넘는 지성과 이성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초월적 변증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월적 분석학은 선험적인 인식 전체를 순수지성의 인식 요소인 개념으로 분해한다. 순수지성의 핵심요소는 개념이며, 칸트는 이를 다른 개념들과 구별하여 ‘범주’(category)라고 부른다. 순수지성의 개념, 즉 범주는 경험적인 것과도 구별되고 감성과도 구별된다. 이것을 완전히 선험적인 체계이다. 초월적 분석학은 순수지성의 개념들에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보는 ①개념의 분석학(연역론, 종합-판단)과 순수지성이 사고할 때 사용하는 원칙들을 다루는 ②원칙의 분석학(원칙론, 도식-판단)으로 나뉜다. 개념의 분석학은 개념의 의미나 내용을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지성 안에서 활동하는 선험적 개념들을 찾아내고 그것의 사용 방식을 분석하는 일로서, “선험적 개념들이 가능함을 탐구하기 위해서 아직은 거의 시도된 바가 없는 지성 능력 자체를 분해함”(B90)을 뜻한다. 칸트는 이를 “초월철학의 고유한 과업”(B91)이라고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고하고 인식하기 위해 선험적인 개념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그리고 그 개념들의 완벽한 체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경험에서는 불가능했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지성의 개념을 경험적인 조건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선험적인 차원에서 발견하고 그 개념들의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범주의 기능, 판단
인간의 지성 인식은 곧 개념들에 의한 인식이며, 지성의 순수개념은 우리 인식 능력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이 개념들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직관은 감성적인 것으로서 어떤 촉발(affections)에 의존한다. 하지만 개념들은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다. 책상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사물들을 그 동일성 속에 책상이라고 통합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이처럼 개념의 기능은 “서로 다른 표상들을 하나의 공통적인 표상 아래서 정돈하는 통일활동”(B93)이다.표상들을 정돈하고 통일하는 활동은 바로 판단하는(judging)일이다. 직관은 대상에 대한 표상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지만, 개념은 대상에 대한 표상과 그렇게 직접 관계맺지 않는다. 직관에 주어진 대상에 대한 표상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용을 하는 것이 개념이다. 따라서 판단은 “대상에 대한 간접적인 인식”이자 “대상의 표상에 대한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모든 판단에는 많은 표상들에 타당한 하나의 개념이 들어 있다.
가령 ‘모든 물체는 가분적이다’라는 판단을 보면, ‘가분성’이라는 개념이 ‘물체’라는 개념과 어떤 관계 속에 있다. 이것은 다양한 물체들의 표상이 ‘가분성’이라는 공통성을 중심으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판단들은 우리 표상들간의 통일 기능들”(B94)이다. 지성의 모든 활동들은 판단들로 환원할 수 있고, “지성 일반은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고한다는 것은 “개념에 의한 인식”이며 여기서 개념은 “가능한 판단들의 술어들”(B94)로서 아직 규정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어떤 표상과 관계한다. ‘물체’는 그 아래 표상들(금속, 나무, 돌 등)을 포함하고 있고 이 표상들을 매개로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개념이 된다. ‘개념-표상-대상’의 구조가 된다. 이때 ‘금속은 물체다’와 같은 판단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물체는 이 판단에서 술어로 쓰였는데 이처럼 개념은 판단(곧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술어이다. 그리고 이 개념에 의해 어떤 대상이 규정된다. 즉 금속이 물체로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판단을 할 때 과연 어떤 통일 기능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지성의 기능들을 전부 밝힐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판단은 일정한 형태와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의 판단표에 의하면 우리가 ‘양의 관점’, ‘질의 관점’, ‘관계와 양상의 관점’이라는 기준에서 판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반 논리학은 술어의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 술어가 주어에 긍정의 형태로 붙는가, 아니면 부정의 형태로 붙는가만 따진다. 즉 영혼은 죽는다, 아니면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긍정판단과 부정판단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칸트의 초월적 논리학은 판단의 형식만이 아니라 판단의 내용도 구별해서 다룬다. 그리하여 형식적으로 긍정이지만 내용상으로 부정적인 명제, 즉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적인 무한판단이 가능하게 된다. 칸트는 자신의 이 삼분법과 전통 형식논리학의 이분법을 구별하고, 자신의 것이 종합적이라고 하였다. 삼분법은 형식 논리의 A와 非A가 아니라 “①조건 ②피조건 ③양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상상력의 종합과 범주의 관계
칸트의 초월적 논리학은 우선 감성적인 ‘잡다’라는 질료를 사고의 내용으로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잡다로부터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 잡다가 먼저 일정한 방식으로 통관되고 수득되어 결합되기를 요구”하는 데 이를 ‘종합’이라고 한다. 이 종합은 상상력의 결과이다. 상상력에 의해 종합되는 과정에 범주가 작용하게 되는데 이 때에 비로소 대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포성을 셀 때 스물 둘, 스물 셋..., 이런 식으로 우리는 소리를 하나 하나 종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종합은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십진법의 질서와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 십진법 이것이 일종의 개념이다. 종합된 것들을 통일할 수 있게 하는 공통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모든 대상들에 대한 인식을 위해 선험적으로 주어져야 할 것은 첫째, 순수직관의 잡다이고 두 번째는 상상력에 의한 잡다의 종합이다. 그러나 이 종합만으로 인식이 형성되지 않는다.“이 순수한 종합에 통일성을 주”는, 바로 대상 인식을 위해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지성이다.
칸트는 여기서 통일성을 주는 세 번째의 ‘개념들’이 둘째 단계의 종합에도 관여한다고 하였다. 포성을 셈할 때 십진법이라는 개념은 상상력이 포성을 종합하는 과정에 이미 상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으로 이런 개념(십진법)이 없으면 상상력은 그런 포성을 듣고도 횟수 대신 ‘심장 떨리게 하는 벼락같은 것’처럼 종합(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스물아홉 번의 포성이 있었다고 종합(판단)하려면 직관적 자료들(포성들)을 상상력이 종합하는 과정에 십진법이라는 개념이 개입해야 한다. 바로 이것을 “순수지성 개념”이라고 부른다. 이 순수지성 개념, 즉, 범주에는 12가지가 있으며 우리가 사물을 판단할 때 작동하는 선험적 개념들이다.
지성의 이 순수개념이 직관 일반에서의 잡다의 종합적 통일을 매개로 자신이 받아 들인 표상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성의 초월적 작업이다. 이런 인식, 혹은 판단이야말로 순수한 지성 개념의 역할이다. 이렇게범주는 표상들의 형태로 주어지는 잡다들에 대해 종합과 통일/판단이라는 선험적 작업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 흄은 상상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상상력과 범주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인과(범주)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학적 진리의 요건인 보편적 필연성에서 벗어났다.
초월적 연역의 근거, 세겹의 종합
한편, 현상들은 지성의 기능없이도 직관에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범주와 같은 사고의 주관적 조건들이 어떻게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지 그 객관적 타당성을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감성과 지성의 이종성을 전제하였기 때문에 감성과 질적으로 다른 지성이 감성적 현상에 대해 규정하고 입법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초월적 연역이다. ‘연역’(deduction)이란 순수지성 개념의 법적인 권한의 행사에 있어 그것이 합법인지 월권인지 그 법적인 권리의 유무를 따지는 일이다. 지성의 순수개념이라는 이 선험적 개념이 대상을 직관하지 않아도 대상에 대해 사고하기 위한 조건으로 선행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선험적 개념들이 사고하기 의한 조건으로 선행한다면 “대상들에 대한 모든 경험적인 인식은 반드시 이 개념들에 따를 것”(B126)이다.
그러나 선험적으로 산출된 개념은 당연히 그 안에 직관적 질료와 같은 대상이 들어 있을 수 없다. 가령 필연성이라는 선험적 개념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직관적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칸트는 이런 선험적 개념을 통해 뭔가를 생각할 수는 없고(내용이 없으므로) 그 대신 “가능한 경험을 위한 선험적인 순전한 조건들”(A95)일 수는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이런 선험적 개념은 경험과 인식을 위한 논리적 형식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연성이라는 개념은 논리적 형식으로서 이 개념적 조건을 통해 어떤 경험이 가능하다. 이처럼 선험적 개념, 즉 순수지성 개념과 경험의 선험적 조건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순수지성 개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고자 한다면 경험 가능성을 위한 선험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든 한 개별적 표상이 다른 표상과 이질적이라면(서로 격리되어 분리되어 있다면) 서로가 연결되고 비교되는 표상들의 전체적 인식이 생겨날 수 없다. 따라서 직관에서의 잡다들도 종합되어야 하고, 감성의 수용성은 지성의 자발성과도 결합되어야 한다. 칸트는 이를 모든 인식에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세 겹의 종합’이라고 하였다. “직관에서 마음의 변양인 표상들의 포착의 종합, 상상에서의 표상들의 재생의 종합, 그리고 개념에서의 표상들의 인지의 종합”(A97). 칸트는 이 세 가지 종합이 주관의 세 인식 원천(감각기능, 상상력, 통각)을 이끌고, 이 인식 원천이 지성을 가능하게 하며, 이에 따라 지성의 경험적 산물인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주관의 인식 원천인 감각기능, 상상력, 통각의 관계
우리에게 최초의 것은 현상이고, 현상이 의식과 결합되면 지각이 된다. 이런 지각들은 마음 속에 흩어져 있으므로 이 지각들의 결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감각기능은 인상들을 수용하는 기능만 하므로 이런 결합은 감각 기능 자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이 잡다를 종합하는 능동적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상상력이라고 한다. 이 상상력의 활동은 포착이다. 상상력의 활동은 직관의 잡다를 하나의 상(image)으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상상력은 인상들을 자기 활동 안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이것이 바로 포착이다.
그러나 이 잡다의 포착도 마음이 한 지각에서 다른 지각으로 옮겨갈 때 앞 지각을 후속하는 지각들에 대해 환기하고 재생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어떤 상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고 표상들이 재생되더라도 아무런 구별 없이 재생된다면(가령 선을 그려 가고 있는데 소리를 재생해 주는 경우) 무규칙적인 표상들의 집적만 생길 뿐 아무런 인식도 생겨나지 못한다. 따라서 표상들의 재생은 규칙을 가져야 하고, 규칙들에 따르는 재생의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근거를 표상들의 연합이라고 한다. 이 표상들의 연합은 경험이 아니라 상상력의 초월적 기능에 의해 그 필연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 상상력의 종합만으로는 아직 인식이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언제나 감성적이기 때문이고, 인식은 지성의 개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기능이 지성화되기 위해서는 순수한 상상력에 바로 순수통각이 덧붙여져야 한다. 생산적인 상상력은 표상들의 포착과 재생, 그리고 연합과 통일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이제 재생된 표상들이 개념의 통제(통각의 통일) 속에서 대상=X를 형성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상상력을 매개로 우리는 한 쪽의 직관의 잡다와 다른 쪽의 순수통각의 필연적 통일의 조건을 결합”(A124)한다. 현상들의 포착과 연합, 재생과 인지로써 성립하는 현실적 경험은 이 범주라는 개념을 통해 그 형식적 통일이 가능해지고 경험적 인식의 모든 객관적 타당성(즉 진리)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상상력의 종합에서의 형식적 통일과 인지, 재생, 연합, 포착에서의 상상력의 모든 경험적 사용도 범주들에 기초하고 있다. 포성과 건물 붕괴 소리, 기관총 소리와 같은 다양한 현상들도 십진법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만 일정한 수로 종합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인식은 개념을 필요로 하고, 이 개념은 언제나 보편적 규칙으로 쓰인다. 가령 물체라는 개념은 연장이라는 표상, 침투불가라는 표상, 형태의 표상과 같은 잡다를 통일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서 외적 현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일종의 규칙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규칙이 직관에 대해 규칙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현상들에서 그 잡다의 필연적 재생을 표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체 개념이 지나가 버린 적절한 표상들을 재생해 주지 않으면 그런 개념은 의식의 종합에 있어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개념에 의한 표상의 통일, 그리고 지나간 표상들의 재생, 다양한 표상들에 대한 동일한 의식, 이것이 바로 대상=X를 만들어 내는 기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필연성에는 항상 초월적인 조건이 기초에 놓여 있”다. 직관들의 잡다의 종합에서는 언제나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 근거를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 근거 없이 직관들을 종합해 대상=X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래 “대상이라는 것은 그것에 대한 개념이 그러한 종합의 필연성을 표현하는 어떤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니 말”(A106)이다. 이 근원적인 초월적 조건을 칸트는 ‘초월적 통각(apperception)’이라고 부른다. 초월적 통각은 직관의 모든 자료에 선행하지만 그 자료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대상에 대한 일체의 표상이 가능한 순수하고 근원적이고 전변 없는 의식의 통일성으로, 질적인 차이 속에서도 전체 수를 셀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의식의 통일성과 동일성, 즉 초월적 통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통각의 수적인 통일성은 선험적으로 모든 개념들의 기초에 놓여 있”(A107)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