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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문2 발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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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엽 작성일25-06-08 10:17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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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문 발표 후기 (2025.6.4)

  안녕하세요. 정리문 발표 후기를 맡은 이동엽입니다. 오늘은 『순수이성비판』의 앞부분 ‘개념의 분석학’의 내용을 정리한 글을 쓰고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화창한 아침이었지만 제 마음은 어두웠습니다.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글을 어떻게 선생님들 앞에서 읽는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영 선생님의 예리한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나라는 걱정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일찍 감이당에 도착해서 다시 제 글을 읽고 교재를 읽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뒤풀이 자리에서 다들 잠을 못 주무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건 비단 저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표 공포증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긴장하고 글쓰기에 부담을 갖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좀 우습기도 했습니다. 이 나이에 선생님에게 혼날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내 글을 읽어주고 피드백을 준다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고 강도가 센 비판을 받을수록 그만큼 나를 변화시킬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좀 속되게 표현하면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본전을 많이 찾아가는 사람은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 지적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문제는 제 마음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위의 내용을 스스로 되뇌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산책해도 남산의 풍경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발표가 끝나자, 거짓말처럼 식욕이 생기고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소중한 발표 자리를 온전히 집중하고 즐길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냥 넘어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발표 공포증은 작년 대중지성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는 앞으로 평생 해야 하는 것이고 공부와 글쓰기 발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philo-’(사랑하는), ‘sophia’(지식, 지혜) 에서 왔다고 합니다. 저의 발표 공포증을 극복하는 실마리도 이 말에서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나의 글이 곧 나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내 글의 흠결은 곧 내 삶의 흠결이라는 생각에 책잡히지 않는 데만 과도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힘들어지고 발표 울렁증이 생겼습니다. 위에 언급한 철학의 어원과 비교하면 저는 ‘지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와 대조적인 모습을 수영 선생님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정리문 발표 때 한 선생님이 글에서 수영 선생님을 언급하면서 존칭과 높임말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수영 선생님은 이 부분이 공적인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화(?)를 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놀라웠습니다. 저도 첫 번째 후기에서 선생님에 대한 높임말을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놀라웠던 것은 본인에 대한 존댓말이 그 본인을 진심으로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를 선생님은 철저히 ‘지혜’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혜의 입장에서는 사적인 존칭과 높임말은 진리를 가리는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주관적 통일에서 객관적 통일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칸트적으로 해석하면 판단에서 객관적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순수 지성 개념들의 연역 부분에서 “판단이란 다름 아니라 주어지는 인식들을 통각의 객관적 통일로 가져가는 방식이다”(『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역, 아카넷, B141) 고 했습니다. 객관적 통일은 “단지 주관적 타당성만을 갖는 재생적 상상력의 법칙에 따르는 주관적 통일”과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면 ‘물체는 무겁다’는 문장은 객관적 통일을 나타내지만 ‘내가 한 물체를 들고 있을 때, 나는 무게의 압박을 느낀다’는 문장은 주관적 통일을 표시합니다.

  저 지혜의 세계, 즉 객관적 통일의 세계에는 불안도, 걱정도, 지적도, 비판도 없습니다. 오직 표상들의 근원적 통각과의 관계 맺음, 곧 현상들의 필연적 통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직관들의 종합에서 표상들이 서로 소속할 때 작동하는 객관적 규정의 원리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가졌던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나의 글은 곧 내가 아닙니다.’ 나의 글은 나의 손을 떠나는 순간 하나의 객관적 분석 대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발표와 질의응답을 통해 객관적 분석과 판단을 연습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부담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다음번 발표날이 임박해지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고 수정하면서 조금씩 객관적 통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부디 다음번 발표 때는 보다 덜 긴장하면서 개념 하나의 정의와 텍스트의 구조분석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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