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비극> 10강 2교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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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민 작성일25-05-29 17:26 조회40회 댓글0건본문
오이디푸스의 자유의 순간
드디어 말로만 듣던 <오이디푸스>를 만났다. 그런데 마지막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큰 감동이 없었다. 너무 기대가 커서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어색한 대화체 형식 때문에? 이것도 아니라면 비극의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여러 이유를 나열해보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노래와 어우러진 극으로 만났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여기까지가 혼자 읽는 한계였다면 세미나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미가 풍성해졌다. 먼저 눈먼 예언자와 눈뜬 살인자의 대비되는 반전구도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가장 맹목적인 자이고 눈 먼 예언자가 눈뜬 왕보다 더 지혜롭다는 서사구도라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여기서 여전히 비극에 대한 이해도가 낮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 구도를 이해함과 동시에 나 역시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일까. 다음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테베가 황폐해지고,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면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도다. 어떤 경우에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필연성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는 ‘비극의 필연성’에 대한 설명이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자문하게 만드는 그런 지점 말이다. 마지막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야기다. 이자(엄마와 아이)관계에서 삼자(사회)관계로 나아갈 때 누구나 격을 수밖에 없는 신경증이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 모두 필연적으로(?) 신경증을 앓고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수영샘의 설명은 덜 소심하고 덜 예민해지길 바라는 자신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었달까. ^^ 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자식과 부모 살인죄의 무게가 다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함께 읽어야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설득되어 가는 중에도 하나의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오전 칸트 시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순간이 칸트의 ‘자유’라는 설명과 함께 ‘키세스단’이 등장했다. 그들이 그 추위에 밤새울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시켜서도, 참을성이 강해서도 아니라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여서일까. 역병의 원인이 자신임을 알게 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두 눈을 찌르는 이 행위를 칸트의 ‘자유’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계속 맴돌았다. 분명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행위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런 자신의 운명이 신의 뜻이니 벌조차도 신에게 기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어둠의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죽음보다 더 두려운 치욕을 안고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 그의 판단이 반성적 판단이자 인간일 수 있는 순간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혼자만의 결론이다.
사실 이날은 오이디푸스 뿐 아니라 두 시간이 넘도록 한눈 팔수 없게 만드는 수영샘의 칸트 수업이 너무 주옥같아서 멋짐과 부러움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주 돌아오는 과제는 힘들어도 듣기를 참 잘했다는 마음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하루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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