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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정리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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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혜진 작성일25-06-03 06:38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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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기능, 상상력, 초월적 통각

지성과 감성의 이종성

우리 인식의 구성 요소는 직관과 개념,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된다. 직관을 통해 대상은 우리에게 주어지며, 개념을 통해 대상은 사고된다. 다시 말해, “감성이 없으면 대상은 주어질 수 없고, 지성이 없으면 대상에 대한 사고는 불가능하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며”, 따라서 “개념을 감성화하는 일”(개념에 직관을 통해 대상을 부여하는 일)과 “직관을 지성화하는 일”(직관을 개념 아래 포섭하는 일)은 동등하게 중요하다. 다만, 칸트 철학의 핵심은 감성과 지성이 결코 하나로 환원되지 않으며, 철저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감성은 경험에, 지성은 사고에 각각 고유한 영역을 갖는다. 이러한 구분에는 합리론이 독단에, 경험론이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 이유에 대한 칸트의 비판이 전제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경험론은 감각이 약화되면 관념으로 전환된다고 보며 지성을 감성으로 환원했고, 합리론은 논리적 모순만 없으면 실재 또한 보장된다고 간주하며 감성을 지성화했다.

칸트의 초월론 철학에서는 지성과 감성 가운데 시공간, 필연성과 같은 선험적이고 비경험적인 개념들이 중요하다. 특히 그는 대상 인식에 있어 지성이 ‘자발적’이며 ‘선험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강조하며, 그중에서도 어떤 경험에도 의존하지 않는 ‘순수 지성’을 분리하여 다룬다. 칸트는 이 순수 지성이 우리 정신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매우 정밀하고 예리하게 분석한다.

지성의 순수개념

직관에서의 포착의 종합, 상상력에 의한 표상들의 재생의 종합, 개념에 의한 표상들의 인지의 종합, 이 세 가지는 인식이 성립되기 위한 기본 전제들이다.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 순수한 감성적 잡다가 일정한 방식으로 포착되고 결합되어야 하고, 둘째, 이 잡다가 상상력에 의해 종합되어야 하며, 셋째, 이렇게 종합된 내용이 지성에 의해 개념 아래로 포섭되어야 한다. 그리고 칸트 철학에서 마지막 지성의 ‘순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인간 정신 속에 선험적 지성의 영역이 얼마나 정교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경험적 조건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순수 지성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작동하는 개념들의 능력을 해부함으로써, 순수 지성의 완전하고 유기적인 체계를 규정하고자 했다.

우선, 순수 지성이란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개념으로, 사고와 지성에 속하며 파생되거나 합성된 것이 아닌 기본적인 개념을 가리킨다. 이처럼 비경험적이고 비감성적인, 완전히 선험적인 체계로서의 순수 지성은 외부로부터 무엇인가가 추가됨으로써 확장될 수 있는 통일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통일체이다. 한편, 개념의 기능은 “서로 다른 표상들을 하나의 공통된 표상 아래 정리하고 통합하는 활동”이며, 이는 일종의 판단 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이란 대상에 대한 표상 자체와 직접 관계를 맺기보다는, 직관에 주어진 다양한 표상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작용이다. 칸트는 이러한 판단에 사용되는 개념들을 총 열두 가지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네 가지 범주 — 양(전칭, 특칭, 단칭), 질(긍정, 부정, 무한), 관계(정언, 가언, 선언), 양상(가능, 현실, 필연) — 에 따라 정교하게 분류하였다.

그런데 칸트의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주목할 점은, 우리의 감성은 단지 표상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역할만 할 뿐, 그것들을 자발적으로 산출하거나 표상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은 감성이 아닌 지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인식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은 감관이 아니라 오히려 이 지성에 있다는 점이다.

이성의 형이상학적 욕망에 대한 칸트의 비판

“대상에 대한 판단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감관의 문제가 아니라 지성의 문제다.” 감성은 단지 경험적 직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그것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반면, 지성은 인식 과정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할 수 있는 능동적 기능을 지닌다. 칸트의 초월적 논리학 중 ‘초월적 변증학’은 바로 이러한 지성과 이성이 “근거 없는 월권으로 인해 헛된 가상을 만들어내는 경향”을 비판하는 장이다. 칸트는 이성이 “순전히 초월적인 원칙만으로도 인식을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 그리고 그로 인한 허구적 발명과 부당한 확장을 지적하며, 순수 지성을 궤변적 환영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타당성을 순정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그는 “우리가 사고하고 인식하기 위해 선험적인 개념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그리고 그 개념들의 완벽한 체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경험에서는 불가능했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지성이 자신의 정당한 한계를 넘어서 월권을 행사하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하게 경계한다.

이러한 비판은 이성의 형이상학적 욕망에 대한 칸트의 핵심적 성찰로 이어진다. 순수 지성의 인식 원칙들은 오직 직관적 자료와만 관계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은 선험적 지성의 원칙들을 경험 세계를 넘어서, 직관과 감성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까지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칸트는 바로 이 지점이 기존 형이상학이 빠졌던 근본적인 오류라고 진단한다.

자기의식으로서의 초월적 통각

‘개념에 의한 표상의 통일’로서의 감각 기능(sense)과 ‘과거 표상의 재생’으로서의 상상력은 우리의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주관의 두 가지 근원이다. 감성은 본질적으로 자발성이 결여된, 직관적 표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형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표상들을 일정한 질서와 연관 속에서 결합하는 순수하고 자발적인 지성적 활동, 즉 종합(통일)의 작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반드시 하나의 작업이 더해져야 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근원적이고 필연적인 의식”이자, “개념들에 따른 모든 현상의 필연적 통합에 대한 의식”인 ‘초월적 통각’이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 어떤 것을 결합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표상할 수 없다.” 결합된 표상은 “객관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관 자신에 의해 수행되는 유일한 표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통일된 표상은 결합 자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통일 표상이 다양한 표상들에 덧붙여짐으로써 결합 개념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통각’이다.

끝으로, 이 초월적 통각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보다 구체적인 일자의 형태로 규정될 수 있다. 초월적 통각은 자기의식이며, 이 자기의식은 하나의 통일된 의식이다. 즉, 칸트 철학에서는 단순히 생각하는 행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표상이 반드시 ‘나의 표상’이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주체가 익명적이었던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과 구별되는 지점으로, 칸트 철학에서는 직관의 모든 잡다한 표상이 주관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는 의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요컨대 초월적 통각이란 “모든 표상에 반드시 수반되는 ‘나는 사고한다’는 표상으로서, 모든 의식에서 동일자로 존재하며 다른 어떤 표상으로부터도 유래할 수 없는 자기의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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