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강의』 정리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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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okiesm 작성일25-06-03 15:53 조회24회 댓글0건본문
정리문② /수성/ 2025-06-04 / 송승미
초월적 통각
순수지성개념의 필요조건
초월적 분석학은 선험적인 인식 전체를 순수지성의 인식 요소들로 분해한다. 여기서 요소들은 ‘개념’이다. 순수지성개념은 순수지성 요소이므로, 경험적이지 않은 순수한 개념이다. ‘직관’이나 ‘감성’에 속하지 않고 ‘사고’와 ‘지성’에 속한다. 그리고 기본 개념이기에 파생되거나 합성되지 않는다. 개념에 관한 표表를 만든다면 그것은 지성의 전 범위를 포괄해야 한다. 이 개념은 순수지성이 인식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칸트는 나중에 다른 개념들과 구별해서 이를 ‘범주’(category)라고 부른다. 직관은 감성적인 것으로서 어떤 ‘촉발’에 의존하지만, 개념들은 능동적이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사물들을 그 동일성 속에서 책상이라고 통합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개념’은 대상에 대한 표상과 직접적 관계를 맺지 않고, 직관에 주어진 대상에 대한 표상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개념의 기능은 “서로 다른 표상들을 하나의 공통적인 표상 아래서 정돈하는 통일 활동”(B93)이다. 즉, 표상들의 정돈과 통일이라는 활동이자 ‘판단’하는(judging) 일이다. 감성적인 직관이 어떤 사물에 촉발을 받아 표상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지성적인 개념은 그런 표상들을 공통적인 표상 아래 정돈하고 통일하면서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단’은 “대상에 대한 간접적인 인식”이자 “대상의 표상에 대한 표상“(B93)이다. 모든 판단에는 많은 표상들에 타당한 ‘하나의 개념’이 들어 있다.
직관과 범주의 초월적 연역
개념들의 형식적 관계만을 분석하면 충분한 일반 논리학과는 다르게 초월적 논리학은 감성적인 ‘잡다’라는 질료를 ‘사고의 내용’으로 확보한다. 그리고 이런 잡다로 부터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 잡다가 먼저 일정한 방식으로 통관되고(gone through) 수득되어(taken up) 결합되기를(combined) 요구”하는“종합”(synthesis)(B102)이 필요하다. 종합은 사고가 가능하기 위한 경험 자료들의 종합과 그 과정의 객관성에 대한 증명으로 종합의 합법적 가능성과 불법적 가능성에 대해서 비판한다. 종합은 다양한 표상들을 서로 덧붙여 ‘하나의 인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전쟁은 포성과 건물의 흔들림, 강력하게 쏟아졌다가 사라지는 불빛들 등 여러 표상들을 모으고 결합함으로써 생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십진법의 개념인데, 상상력이 포성을 셈할 수 없으면 상상력은 포성을 듣고서도 ‘전쟁’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는다.
선험적으로 대상과 관계를 갖는 개념에는 감성의 형식인 ‘시공간’과 지성의 개념인 ‘범주’가 있다. 이런 개념들을 경험적으로 연역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경험에서 아무것도 빌려오지 않고도 경험적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적 연역이 아닌 초월적 연역이 필요하다. 여기서 ‘연역’은 선험적으로 활동하는 부분에 대한 분석으로 “범주가 법적으로 합법인지 월권인지 그 법적인 권리의 유무를 따지는 일”이다. 지성 개념인 ‘범주’는 경험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고, 인식을 위해 꼭 증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초월적 연역’이 요구된다. 즉, 초월적 연역은 권리의 정당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경험적 인식의 세 겹의 종합
칸트는 초판에서 경험적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 겹의 종합’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 겹의 종합이 주관의 세 인식 원천인 감각기능, 상상력, 통각을 이끌고, 지성을 가능하게 하며, 이에 따라 지성의 경험적 산물인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든 한 개별적인 표상이 다른 표상과 이질적이라면 서로가 연결되고 비교되는 표상들 전체적 인식이 생겨날 수 없다. 따라서 직관에서의 잡다들도 종합되어야 하고 감성의 수용성은 지성의 자발성과도 결합해야한다.
그러면, 세 겹의 종합을 살펴보자. 먼저 ‘직관에서의 포착의 종합’으로 경험적 포착이 가능하려면 선험적으로 이미 포착의 능력이 전제 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칸트는 경험적 포착의 종합 이전에 하나의 순수한 포착의 종합을 갖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표상은 마음의 변양으로서 내감에 속한다. 표상은 마음의 변화 없이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표상들은 내감의 형식적 조건인 시간에 종속된 방식으로 배치되고 관계를 맺는다. 즉 잡다를 일별한 다음 그것을 통괄한 후 내감에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의 단일체로 묶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포착은 포착만으로 인식을 완성할 수 없기에 ‘상상력’이라는 재생의 도움이 필요하다. 두 번째 ‘상상력의 재생의 종합’은 재생의 법칙으로 자주 연속되는 표상들이 서로 연합하고 연결되는 경험 법칙이다. 대상이 없더라도 하나의 표상이 나타나면 규칙에 따라 다른 하나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재생의 법칙은 현상들이 연합의 규칙에 종속되어 표상들의 잡다 안에서 일정한 규칙들에 따르는 잇따름이 일어난다. 이 재생의 종합은 하나의 선을 상상 속에서 그어 나갈 때 선행했던 표상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진행하지 않으면 완전한 선을 그을 수 없다. 세 번째, ‘개념에서의 인지의 종합’은 지나간 지점의 선들을 떠올릴 때 그것이 조금 전에 표상되었던 선과 동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하나의 동일한 의식’을 유지해야 한다. 십진법이라는 개념이 수를 셀 수 있으려면 의식은 전체를 형성할 때까지 동일한 것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월적 통각은 자기의식
칸트는 재판에서 기본적으로 감성과 지성의 구조 아래서 ‘상상력’을 지성에 의해 감성이 종합을 담당하는 자발성으로 정의한다. 인식에 있어 상상력은 지성의 통제 아래 직관 자료들을 종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력은 직관에만 관련되기에 지성의 지배를 받으면서 직관들을 종합해 준다. 그래서 현존하지 않는 걸 재생해서 결합하는 힘을 ‘상상력’이라고 재판에서 다시 규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각’이라고 부른다. ‘통각’은 지성의 근본 기능이다. 표상들을 일정한 질서와 연관 아래 결합하는 지성의 작용을 종합(통일)이라고 불렀고, 이 종합(통일)은 지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인간의 고유능력이다. 여기서 결합된 표상은 객관으로부터 주어질 수 없다. 객관은 주관 바깥의 저 대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관 자신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유일한 표상”(B130)으로 ‘직관의 잡다가 범주에 의해 통합’될 때 형성된다.
그런데 표상들의 결합은 표상들의 종합에서 ‘의식의 통일’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의식의 통일은 표상들이 한 객관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말하고, 이렇게 객관과 표상들이 관계를 맺게 될 때 ‘하나의 인식’ 성립을 칸트는 “표상들의 객관적 타당성”(B137)이라고 말한다. ‘연상’과 ‘연합’이라는 주관적 통일은 경험적이면서 우연적이다. 하지만 의식의 객관적 통일은 직관에 주어진 잡다를 객관이라는 개념에서 합일되는 통각의 초월적 통일이다. 통각의 초월적 통일은 표상들을 배제하거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는 동일자에 필연적으로 관계 맺게 함으로써 객관적 타당성을 가진다. 잡다의 종합에서는 언제나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 근거를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 근거 없이 직관들을 종합해 대상=X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내감은 수많은 표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의 지속적이고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자기 자신을 확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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