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서브 텍스트 세미나]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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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슈 작성일24-10-06 08:55 조회28회 댓글0건본문
어째서 에로스인가?
<1984>
<1984> 1장은 디스토피아 사회 설명에 할애했다면 2장에서는 조지오웰의 소설가적 면모가 드러났다. 사랑은 언제든 드라마의 중요 요소 아닌가? 언제 들킬지 모르는 서스팬스까지 더했다. 긴장을 3장까지 끌고 가, 어떻게 사랑을 배신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야기 구성으로도 탁월한 선택이지만, 숨겨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조지 오웰은 어째서 에로스(性)를 택했는가? 에로스는 억압, 혁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폭력적이고 억압적 역할을 하는 종교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득 확장에 집중하며, 신의 이름으로 증오, 배제, 폭력의 문화를 확산시킨다(강남순 칼럼 '좋은 종교와 나쁜 종교' 인용). <1984>에서 빅브라더는 사회 질서이자 종교다. 인민의 에너지를 억압하고 감정 발산을 금지한다. 성 행위에서 기쁨이 있어서는 안된다. 사랑도 느껴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인간의 몸조차 딱딱하고 차갑다. 어째서 권력은 성을 억압하는가? 자연스러운 욕망의 추동은 식욕과 성욕으로 드러난다. 식욕으로 에너지가 들어오고 성욕으로 에너지를 발산한다. 성욕을 억제하면 어디론가 에너지를 발산할 곳이 필요하다. 빅브라더는 감정과 성욕을 발산하지 못하게 막은 후 그렇게 쌓인 에너지를 기득권을 위해 사용한다. 증오시간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리비도(성 에너지)를 추동 에너지로 보았다. 그는 뒤틀린 성 억압, 리비도의 자아 집중 현상을 정신병의 원인으로 보았다. 부모를 밀고하는 자녀, 순간의 표정마저 잡아내는 동료, 스튜 냄비를 얻기 위한 소란, 자신의 기억을 한없이 짓밟아버리는 사람들, 증오시간과 증오주간, 교수형에 환호하는 아이들. 이런 소름끼치는 모습은 사회가 만들어낸 정신병이다.
에리히 프롬에게 사랑은 '어떤 대상을 귀중히 여기는 마음, 생에 대한 긍정, 기쁨'이다. '한 사람'에 대해서만 경험되는 사랑은 사도 마조히즘으로 흐를 위험성을 지적했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 개인이 건강하게 사랑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사회를 변혁시키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자아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승화시켜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설명한다.
2장에서 윈스턴과 줄리아의 사랑을 다룬다. 윈스턴은 나무토막 같은 아내에게 역겨움을 느낀다. 즐거움을 느끼면 안되는, 빅브라더의 감시를 받는 현실에 의문을 갖는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금지된 것을 탐닉한다. 윈스턴은 '과거를 위해' 건배하나, 과거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브라이언과의 문답을 통해 윈스턴에게 방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윈스턴은 빅브라더를 타도하고자 오브라이언을 찾아간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시험한다. 윈스턴은 아이들에게 황산을 뿌리더라도, 수백 명의 무고한 이를 죽이더라도, 명령에 따르겠노라고 답한다. 한 가지, 줄리아와 평생 못 만나더라도 괜찮냐는 물음에만 안된다고 답한다. 그의 사랑은 오직 줄리아만을 향해 있다. 윈스턴은 빅브라더를 타도하고 싶을 뿐, 갈망하는 상이 없다. 지향하는 바가 없다. 도저히 과거를 기억해낼 수 없기 떄문이다. 윈스턴은 오직 줄리아만을 향한 사랑으로 필연적인 실패를 예고한다.
3장에서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정신적, 신체적 고문을 가한다. 심리적 고문 방식은 2024년을 사는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하다. 기억을 부정하기, 폐기하기, 과거를 변경하고 파괴하기, 순교자의 권위를 때려부수기 등. 신자유주의와 왜곡된 역사를 등에 업은 권력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지 않나? 고문을 겪고 윈스턴은 줄리아를 저버린다. 그의 영혼은 이미 죽었다. 개인의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랑을 하겠는가? 이 또한 익숙하다. 그래서, 더이상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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