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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비 작성일24-10-26 15:40 조회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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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쏜살같지 않아

오늘의 사이언스 토크는 현대 물리학의 도전적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양자 중력과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나누었는데, 이 과정에서 과학이 문학처럼 아름답고 유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다.

빅뱅 이전의 세계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지만, 로벨리는 '빅바운스'라는 개념으로 이를 풀어낸다. 우주가 수축했다가 다시 팽창하는 모습, 마치 전자가 원자핵에 가까이 갔다가 반발하는 것처럼, 우주도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영원한 순환과도 닮아 있어, 과학이 신비와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블랙홀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정보가 블랙홀의 표면에 남아있다가 블랙홀이 사라질 때 튀어나온다는 주장들, 이 모든 것이 과학이 품고 있는 신비로움을 더욱 깊게 느끼게 했다.

가장 가슴에 와닿은 문장은 바로 '무한한 것은 우리의 무지이다'였다. 우주는 유한하지만, 우리의 무지는 끝이 없다. 이 무지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적인 자세가 아닐까. 로벨리는 현대 물리학의 복잡한 개념들을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냈기에, 노벨 문학상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학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탐구의 열정을 불어넣는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열과 시간의 유사성에 대한 논의였다. 열은 한번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고, 시간 역시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이 성질을 통해 열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통찰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청년들이 열받는다는 표현처럼, 열심히 사는 이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열을 덜 받고, 천천히 차분하게 살면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이런 통찰은 물리학의 법칙을 일상의 윤리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열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무지 앞에서 질문을 던지며 신비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로벨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메시지다.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 끝없이 탐구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는 흔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은 길고도 깊게 남아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매 순간 열정을 쏟아 시간을 붙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신비로운 탐구의 길로 안내하는 태도일 것이다. 열받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의 철학이 아닐까.

막 이런 식의 생각, 자기의 영속에 대한 집착, 이런 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느끼게 한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즐겁고 유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100년을 살아도 죽기 전에 "하룻밤의 꿈이었구나"라고 한숨 쉬듯 말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하룻밤을 산 것과 다름없다. 시간은 자기가 구성하는 것이기에, 이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필요하다. 기운이 없어서 여기까지밖에 못했지만, 시간이란 결국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샘과도 같다. 열 조절을 잘하고, 올라온다고 해서 막 써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참으로 복잡한 물리학 개념들과 얽혀 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일단 우주라는 큰 그림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처음, 우리가 흔히 그리는 우주의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 두 개의 구, 서로 마주 보는 듯하지만, 동시에 아무런 경계도 없는 그 모습. 이건 사실 4차원을 3차원에서 표현한 도식에 불과하다. 이걸 이해하려면 우린 머릿속부터 한바탕 뒤집어야 한다. 그렇다, 우린 지금 4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4차원 세계를 3차원적으로 도식화한다는 건 간단치 않다. 이 도식은 결국 우리가 보고 인식하는 게 곧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거다. 현실이라고 부르는 게, 실제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경고해주는 시각적 장치랄까. 


양자 중력과 일반 상대성 이론의 모순적 동거

이제,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계, 즉 우주를 좀 더 들여다보자. 어찌 보면 우리 자신이 우주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 밖으로 나가거나 그 경계를 넘어서 볼 수는 없다. 바로 그 내재적 기하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건 우리가 경험하는 범위,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우주의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게 왜 중요한지 묻고 싶을 것이다. 그 답은 바로 오늘 이야기할 ‘스핀 네트워크’에서 시작된다. 공간의 탄생과, 그 탄생이 우리 경험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사실상 이것이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두 거대한 이론, 즉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까? 일반 상대성 이론은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굽게 만든다는 우주적 차원의 개념이다. 한편, 양자역학은 입자성, 관계성, 비결정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미시적 세계를 설명한다. 두 이론은 우주의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해왔다.

이 두 이론의 갈등을 살펴보면, 일반 상대성 이론은 기본적으로 시공간이 연속적이고 굽어있다고 말한다. 반면, 양자역학은 시공간을 평평한 무대 위에서 입자들이 불연속적으로 도약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연속적인 우주와 불연속적인 우주, 굽은 시공간과 평평한 시공간. 이 둘은 처음부터 모순적이다. 하지만 모순에도 불구하고, 두 이론은 각기 거대한 세계와 아주 작은 세계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큰 질량과 에너지를 다루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우주적인 스케일을 설명하는 반면,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론이 갈라선 채로만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그것이 바로 우주적 사건들, 예를 들어 빅뱅과 블랙홀이다. 빅뱅은 우주의 시작을, 블랙홀은 그 극단적인 상태를 설명해야 하기에, 이제는 거시계와 미시계를 하나로 묶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양자장 이론의 등장 

이때 등장하는 것이 양자장 이론이다. 양자장 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 장들이 사실 양자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중력장 역시 시공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그러면 시공간 자체가 양자적 특성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맞다. 바로 이 개념이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이다. 우리가 아는 거대한 우주의 시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양자적 특성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양자 중력 이론은 두 세계, 즉 거시적 세계와 미시적 세계를 통합하려 한다.


끈 이론과 고리양자중력 이론

양자 중력 이론에 대한 첫 번째 접근법 중 하나가 끈 이론이다. 이 이론은 시공간의 근본적 구조를 설명하려 했지만, 시공간 자체의 탄생보다는 그 내부의 현상에 주로 집중했다. 반면, 고리양자중력 이론은 시공간의 탄생, 그리고 그 이전의 상태까지 설명하려 한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방식을 요구한다. 우주를 이해하는 우리의 문법 자체가 변해야만 한다.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이제는 양자적 관계에 의해 시공간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존 휠러와 거품 우주론

여기서 물리학자 존 휠러가 등장한다. 그는 양자화된 시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독창적인 이미지를 제안했다. 양자화된 전자를 구름처럼 묘사한 것처럼, 그는 양자화된 시공간을 ‘거품’으로 표현했다. 이 거품은 시공간의 잠재태, 아직 존재하지 않은 가능태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비공간’인 것이다. 아직 공간은 아니지만, 공간이 될 수 있는 무언가로서의 상태. 휠러는 이를 통해 시공간의 양자적 특성을 시각화하려 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시공간은 이제 더 이상 연속적이거나 무한히 분할 가능한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공간도 결국 양자화된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한계는 플랑크 길이로 정의된다. 이 플랑크 길이는 공간의 최소 단위이며, 양자적 시공간의 핵심적 특성이다. 

여기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결국, 우리가 아는 시공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양자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탄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시공간은 양자적 성격을 통해 드러난다

스핀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제 우리는 양자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스핀은 전자들이 가진 독특한 성질, 일종의 '내적 자전'을 가리킨다. 재밌는 건, 겉으로는 아무것도 돌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 작은 전자는 자기장을 만났을 때 회전하는 특성을 가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 돌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 

이걸 이해하려면 당구를 생각해보자. 가만히 있는 당구공을 큐대로 쳤을 때 공은 직선으로 나가겠지. 그런데 만약 그 공이 돌고 있다면? 이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공이 돌고 있는 방향에 따라, 직선 대신 다른 경로를 택하게 된다. 전자도 마찬가지다. 자기장이라는 큐대가 전자를 때리면, 전자는 곧장 직진하지 않고, 그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것이다. 겉으로는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는 회전의 세계인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회전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딱’ 하고 정해진 두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2분의 1이냐, 마이너스 2분의 1이냐, 그 중간은 없다. 그 결과, 시공간 자체도 불연속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핀 거품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등장한다. 시공간이 마치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양자적 덩어리들, 즉 스핀 거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시공간의 숨겨진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스핀 거품 이론을 풀어낸 사람은 필러와 드윗이다. 이들의 방정식은 양자 중력 이론을 열어젖힌 열쇠였다. 그러나 그 해답을 찾아낸 이는 바로 리 스몰린. 양자 중력 이론의 대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제자였던 까를로 로벨리, 이탈리아의 청년 물리학자는 인생의 굴곡과 함께 양자 중력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재밌는 사실은, 로벨리가 스몰린을 찾아간 이유가 단순한 연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연인과의 이별로 상심해있던 로벨리는 연구를 핑계 삼아 스몰린을 찾아갔다. 그런데 스몰린도 마침 같은 시기에 연인과 헤어졌다는 사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우정을 쌓았고, 그 덕분에 양자 중력 이론은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다.

스몰린과 로벨리가 발견한 중요한 개념은 '고리'였다. 이 고리가 바로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이다. 고리들이 서로 만나고 얽힐 때, 비로소 공간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리 자체보다는 고리가 만나는 지점, 즉 매듭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매듭을 노드라고 부르는데, 이 노드들 덕분에 부피가 생기고, 그로 인해 공간이 출현한다.

즉, 공간이란 고리와 고리의 만남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만남이 없으면 공간도 없다. 노드와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구조가 달라지며, 그 과정에서 공간의 불연속성과 양자적 성격이 드러난다. 이 만남의 순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정해진 값들로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스핀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스핀 네트워크는 고리와 노드의 관계 속에서 공간의 탄생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공간의 곡률이다. 시공간은 단순히 평평한 무대가 아니다. 마치 종이가 구겨진 것처럼, 시공간은 굽어있다. 루프를 따라 1바퀴 돌면, 처음 시작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공간의 곡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공간은 그 자체로 구부러져 있으며, 그 곡률은 고리와 고리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결국, 스핀 네트워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의 탄생과 그 구조적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뉴턴의 시대에 공간은 단단한 상자처럼 고정된 것이었지만, 이제 양자 중력 이론은 그 공간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공간은 불연속적인 양자적 만남 속에서 탄생하고, 그 곡률과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시공간의 근본적 속성, 즉 양자적 성격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관계에 의해 공간을 창조하는 존재

양자 세계에서 펼쳐지는 공간의 신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양자 중력 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노드들의 관계 속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이 노드들이 마치 공간의 ‘원자’처럼 기능하며, 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공간이 탄생한다. 그 과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다. 

이 노드들의 관계가 곧 공간이다. 물리적 공간이 그저 우리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 각 노드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배치되고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공간 자체가 결정된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고정된 그릇처럼 생각하지만, 양자 중력 이론에서는 공간 자체가 탄생하는 것이며, 그것은 노드들의 배치와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즉, 공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이 형성됨으로써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론적 해석이다.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노드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공간이라는 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노드들이 서로 어떻게 인접해 있는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된다. 공간은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관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이 노드와 노드 사이의 관계는 그래프의 링크로 표현된다. 링크로 연결된 두 노드는 인접한 양자 공간을 나타낸다. 이 접촉과 관계가 곧 공간의 구조를 만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장소나 공간은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드들이 어떻게 얽히고설켰느냐에 따라 탄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도 따로 존재하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그저 노드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공간일 뿐이다. 우리는 관계에 의해 공간을 창조하는 존재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는 존재도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여러 노드들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맺는 관계에 따라 나라는 존재는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다른 나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고정된 나라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양자역학의 핵심인 상호작용의 개념으로 들어가 보자. 양자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 간의 상호작용이다.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사물은 고정된 실체로 여겨졌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사물조차도 상호작용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상호작용 없이 어떤 사물을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없듯이, 양자 세계에서도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스핀 네트워크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우리는 스핀 네트워크를 거미줄처럼 그려놓고 고정된 무언가로 이해하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관계망일 뿐이다. 실체처럼 보이는 것은 그저 상호작용의 결과일 뿐이며, 스핀 네트워크 자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상호작용의 흐름이다. 스핀 네트워크는 어떤 확률적인 구름 속에 퍼져 있으며, 그 구름은 특정한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작은 규모에서 보면, 공간은 중력 양자들이 끊임없이 요동치는 무더기와 같다. 양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 속에서 스핀 네트워크로 얽힌다. 양자들의 이 끝없는 요동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의 근본적인 특성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양자들 간의 상호작용이며, 이 상호작용이 바로 노드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다. 노드 자체가 관계인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노드들이 단순히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이 시공간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은 이러한 관계들의 망이 끊임없이 밀려들며 만들어지는 조직이다. 이 선들은 그 자체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비존재로서 그저 잠재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그 선들은 비로소 공간을 만들어낸다. 결국 공간이란, 개별 중력 양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계는 곧 정보와 연결

여기서 우리는 정보라는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관계는 곧 정보와 연결된다. 정보란 그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결과물이다. 정보는 모호한 상태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받는 일종의 동적인 상태다. 우리가 흔히 정보라고 생각하는 고정된 데이터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생성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정보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 속에서,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때 정보는 가능성의 대안, 즉 경우의 수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주사위는 6개의 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정보의 양은 6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경우의 수가 많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그 가능성은 줄어든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정보의 양은 줄어들며, 처음엔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던 정보가 점차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보량은 줄어드는 것이다. 처음엔 모르는 것이 많지만, 점차 관계를 맺으면서 정보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구체적인 하나의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줄어들수록 재미는 사라진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게 되면, 처음의 신비로움은 점차 사라지고,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무지가 있어야만 재미가 있는 것이다. 무지가 우리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즐겁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채워주는 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 우리가 맺는 관계, 우리가 알아가는 정보 모두가 양자 세계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확정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공간, 그 속에서 생성되는 나라는 존재, 그리고 우리가 알아가는 정보는 결국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의 흐름 속에서 재탄생하는 것이다. 스핀 네트워크가 끊임없이 요동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삶도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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