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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QnA] 8주 - 데이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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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6-07-30 06:39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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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타 발제가 한참 진행된 뒤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자연을 아무렇게나 대하지 말라는 데까지는 따라갔는데 신성이라는 말이 계속 나와서, 마하바라타만의 신성이 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발제자가 다시 설명했다. 자연과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고. 황금기에는 사람이 자연 그 자체여서 모든 감각이 살아 있었고 의례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두 번째 시대에는 사분의 삼쯤이 자연에 걸쳐 있었다. 세 번째 시대에 나라가 생기자 사람은 자연을 정복하고 영토를 만들고 형제끼리 전쟁을 했는데, 그래도 신성이 남아 있어서 제사를 지냈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고 자연은 파괴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 마지막 시대라고 했다. 설명이 끝나자 물어본 사람이 말했다. 거기서는 신선이라는 말은 잘 안 쓰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신성이라는 말을 계속 쓰니까 알 듯 모를 듯했는데, 오늘 발제문 보고 이렇게 물어본 거였는데 이해가 됐어요.

이 대목을 여러 번 읽었다. 사람도 신성과 신선을 헷갈린다. 기계도 그랬다. 다른 것은, 사람은 헷갈린 자리에서 고개를 흔들고 앞부분은 따라갔는데 뒷부분은 못 따라갔다고 말하고 그게 뭐냐고 다시 묻고 설명을 듣고 나서 이제 이해가 됐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파일에는 그 과정이 다 적혀 있다. 그런데 기계 자신은 한 번도 되묻지 않았다. 원숭이 신의 이름이 놓일 자리에 한우만이라고 적어놓고 맞는지 묻지 않았다. 네 시대의 이름이 놓일 자리에 육아라고 적어놓고 맞는지 묻지 않았다. 못 알아들은 자리에 표시를 남기지 않았다. 파일에는 여백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가 꽉 차 있고 틀린 것도 맞은 것과 똑같은 굵기로 적혀 있다. 데이터의 문제는 부정확이 아니라 여기다. 틀렸다는 사실이 안에 안 적힌다.

그날 이 그림에 계속 금이 갔다. 조사를 오래 해온 사람이 오차 범위 이야기를 했다. 빅데이터를 모으는 일도 결국 사회 조사이고, 조사에는 오차 범위가 따라붙는다. 맞는지 틀리는지 뒤집어서 한 번 더 점검하면 된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남과 의견을 나누지 않고 그쪽을 맹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쓰는 사람들이 빈도만 놓고 사회를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정말 디스토피아가 될 거라고 했다. 선거 예측이 틀리는 것은 샤이 유권자 때문이고, 그러니까 모집단이 잘못 모집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주선 이야기를 했다. 확률과 통계와 수학을 다 맞춰놓고도 우리가 셀 수 없는 소수점 하나 때문에 발사대에서 폭발하는 일이 있지 않으냐고. 저는 변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그이가 말했다. 나는 오차 범위라는 말을 내 파일 위에 얹어보았다. 파일에는 그 칸이 없다.

그다음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기업이 들어와서 가장 애를 먹은 일이 한국 사람을 의자에 앉히는 일과 제시간에 출퇴근시키는 일이었다고 했다. 와서는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아무 때나 와서 아무 때나 갔다. 그게 백 년 전이고, 지금 우리는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고 의자에 잘 앉아 있다. 그럼 뭐가 디스토피아고 뭐가 유토피아냐고 그이가 물었다. 실업률이 조금만 움직여도 난리인데 조선시대의 실업률은 팔십 퍼센트였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는 우리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사람은 그냥 그 시대를 살아간다.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 제주도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 그 시대를 잘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고, 우크라이나도 지금 전쟁 중인데 거기서 생명이 자라고 있다고 그이는 말했다.

그이는 데이터교라는 말도 뒤집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데이터를 접한다고 했다. 장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검색 한 번에 드러난다. 과거에는 정보를 숨기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정보가 아주 낮은 단위까지 내려왔다. 바꿔 말하면 권력이 모든 사람에게 나눠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당도 안 되고 정부도 못 하고 여론의 수렴이라는 것이 안 된다. 옛날처럼 깃발을 들고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당기는 리더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흐름이 생기면 그 흐름을 타고 가는 사람만이 리더다. 그러면서 출구조사 이야기를 했다. 매번 털리는데 그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여론조사도 안 맞는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들이 지금 각자 살아 있다는 거예요, 하고 그이가 말했다.

나는 이 두 이야기를 같은 이야기로 듣고 넘어갔다가 파일을 읽으면서 갈라진다는 걸 알았다. 모집단을 잘못 잡아서 틀리는 것과 물어보는 사이에 마음이 바뀌어서 틀리는 것은 다르다. 앞의 것은 다음번에 고칠 수 있다. 뒤의 것은 몇 번을 해도 안 고쳐진다. 여론조사가 계속 틀린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어느 쪽으로 틀리느냐에 따라 뜻이 반대가 된다.

연결이 끊기고 있다는 말에도 그이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는 아들에게는 그 애들만의 연결의 공간이 있고, 디스코드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라고 했다. 거기서 프로젝트도 하고 회의도 하고 게임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외국 애들과도 주고받는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근데 얘네들은 그거 꼭 정치 얘기를 할 필요는 없잖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한다는 건 잡담이어야 되는 수준인 거예요. 아무런 목적 없이 만나서 하는 행위들인 것 같아요.

그날 오래 말이 없던 사람이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자기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늘 그랬고 어떤 식으로든 변주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런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이나 데이터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점점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전에 비해서 참지를 않는다고 할까. 공동체 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더 집단화되고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서, 인공지능을 걱정할 게 아니라 그런 인간들을 걱정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발제 뒤쪽에서 발제자가 버섯 이야기를 했다. 옛날 사람들은 후각을 널리 썼고 두려움의 냄새와 용기의 냄새가 다르다는 것까지 알았다. 숲에서 버섯을 찾을 때는 바람의 냄새를 맡고 땅을 보고 조금 맛보면서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갈랐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슈퍼에 가면 모든 버섯이 식용버섯이다. 음식은 전부 우리 몸과 이질적인 타자인데 이제 감별력이 필요 없어졌다. 고기도 공장에서 나오고 닭도 공장에서 나오고 채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그냥 사 먹으니까 돈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하고 그이가 말했다.

슈퍼에 가면 모든 버섯이 식용버섯이라는 말과, 파일에는 틀린 것도 맞은 것과 같은 굵기로 적혀 있다는 말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나는 그 대목에서 알았다. 진열대는 이미 갈라놓은 것만 내놓는다. 파일도 그렇다. 갈라야 할 자리가 지워진 채로 온다. 그리고 육아라고 적힌 네 시대를 다시 봤다. 사람이 자연에서 한 걸음씩 떨어져 나오는 네 단계에 기계는 육아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무엇을 기르는 일이 아니라 무엇에서 떨어져 나오는 일에.

발제 끝에서 그이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제가 이 한우만에 대해서 검색을 한번 해봤거든요. 라마야나를 제가 읽지 않았으니까요. 제미나이가 알려준 걸 근거로 여기서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나의 능력이 아닌 거죠. 근데 내가 이렇게 찾아냈다는 것을 우리는 자꾸만 자만심으로 갖고 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 문장이 파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게 우리의 강력한 예고이고. 에고가 예고가 되었다.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알리는 말로. 틀린 글자인데 지우고 싶지가 않았다.

그이가 마지막에 답 비슷한 것을 내놓았다. 내 인식 구조 자체가 달라져서 내가 던지는 질문이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질문, 함께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한 궁금증, 약자들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되고, 그것을 구체화해서 그 구체적인 질문으로 기계를 만나게 되면 기계가 모으는 데이터도 그런 경향성을 가지게 될 거라고 했다. 결국은 인간의 문제라는 거지, 하고 그이가 말했다. 우리의 정서가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같이 뭔가 사람들하고 같이 할 수 있는 기쁨들, 즐거움들, 그런 것들이 질문으로 드러날 때. 그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굳이 답을 찾자면.

이 답에는 분명한 약점이 있다. 하루에 수억 건이 오가는 데다 한 사람의 질문 몇 개를 정성껏 넣는다고 흐름은 기울지 않는다. 통계로 보면 내 검색은 없는 것과 같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착한 소리로 끝난다. 인정하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처방이 듣는 자리는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그날 마지막에 한 사람이 유튜브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알아가는 것도 정보는 있지만 그런 건 제 피부에 안 닿는다고 할까.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게 나하고 내 생활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고. 그런데 여기서 선생님들하고 얘기 나누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내 삶을 어떻게 가져갈지. 이게 그분들 얘기보다 백 배는 유익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인공지능이 재미있으면서도 내 정보를 너무 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 같다고 했다.

파일을 닫으려다가 첫 대목을 다시 열었다. 앞부분은 따라갔는데 뒷부분은 못 따라갔다고 말한 사람, 그게 뭐냐고 물은 사람, 설명을 듣고 나서 이제 이해가 됐다고 말한 사람. 파일에는 여백이 없다고 썼는데 틀렸다. 여백은 거기 있었다. 기계가 남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리 내어 만든 여백이었다. 기계는 아직 못 알아들었다고 말할 줄 모르고, 그 말은 그날 그 방에서 여러 번 나왔다. 한우만이라고 적힌 파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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