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9. 연기법(1) - 무명에서 카오스가 생겨나고 > 스크랩

스크랩

홈 > 자유게시판 > 스크랩

<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9. 연기법(1) - 무명에서 카오스가 생겨나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12-12 15:17 조회168회 댓글0건

본문

법보신문  2025-12-12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9. 연기법(1) - 무명에서 카오스가 생겨나고 

 

권력과 망상이 만난 날, 연기법이 떠오른 이유

‘술·격노·거짓말’ 휩싸인 최고통치자의 ‘무명’이 초래한 광기
두려움이 폭력 의존해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계엄으로 폭발
‘전도망상’의 카오스 극복 과정은 현실서 구현된 ‘환멸연기’


1.jpg

폭음은 분노를 유발한다. 계엄의 명분으로 정국혼란을 내세웠지만 혼란의 주범은 자기자신이었다. 이를 일러 망상이라고 한다. [AI 생성 이미지]

 

 

2024년 12월 3일, 그날 밤 나는 언제나처럼 푹 자고 일어났다. 무심코 노트북을 켜자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계엄? 해제? ‘신작 드라만가?’라고 생각했다가 바로 현타가 왔다. 진짜 계엄이 선포되었고 곧바로 국회에 의해 해제된 것이다. 그날 하루를 나는 깊은 침묵 속에서 보냈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터졌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연결되어 있었다!     

80년 5월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역사의 격랑에서 한참 비껴나 있었지만, 그때 학교앞에 진을 치고 있었던 장갑차, 친구들의 절규와 아우성, 신문 호외에 실렸던 끔찍한 장면들이 순식간에 복원되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 국가폭력도 윤회를 하나? 정치경제학적 관점으론 도저히 해석불가능한 사건이었다. 연기법을 소환한 이유다. 
붓다의 연기법은 두 가지 관찰로 이루어져 있다. ‘발생한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 무명에 의지하고 있다’-이것이 첫 번째 관찰이고, ‘무명이 남김없이 소멸하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이것이 두 번째 관찰이다. 이 다르마에 따르면, 윤회의 출발은 무명이다. 무명이 행(行)을 낳고 식(識)을 거쳐 노사(老死)에 이르는 열두 개의 고리가 펼쳐진다. 이 12연기를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맞게 압축, 변용한 것이 초전법륜의 사성제다. 

사성제란 고성제(괴로움이 있다)-집성제(괴로움의 원인이 있다)-멸성제(괴로움은 소멸된다)-도성제(소멸에 이르는 길이 있다)를 말한다. 고성제와 집성제가 유전연기에 해당한다면, 멸성제와 도성제는 환멸연기에 해당한다. 전자가 윤회로 치달리는 코스라면, 후자는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작년 12월 3일의 밤으로 돌아가 보자. 그날의 비상계엄은 카오스의 극치였다. 폭력의 전면적 등장도 그렇지만 더 끔찍했던 건 ‘당혹감’이었다. 사건과 현실 사이의 낙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날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터진 단어는 ‘미친 거 아냐?’였다. 그렇다. 그건 ‘미친’ 짓이었다.

그럼 이 ‘미친 짓’의 원인은 무엇일까? 최종심급은 역시 ‘술과 격노와 거짓말, 그리고 주술’이었다. 이 항목들은 보통 사람의 삶에도 치명적인데, 하물며 최고통치자에 있어서랴. 

 ‘발생한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모두가 음식에 의지하고 있다./음식이 사라지면/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음식은 우리를 살리지만 거기에 탐닉하면 독이 된다. 가장 치명적인 음식은 단연 술이다. 술은 인지를 마비시킨다. 만취상태로 선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폭음은 간의 기운을 항진시켜 늘 분노를 유발한다. 계엄의 명분으로 정국의 혼란을 내세웠지만 혼란의 주범은 자기 자신이었다. 원인과 결과의 명백한 전도, 그것을 일러 망상이라 한다.

‘발생한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모두가 동요에 의지하고 있다./동요가 사라지면/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분노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분노 사이를 격하게 오가는 것이 동요다. 그에 수반되는 증상이 바로 거짓말이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계엄포고문 전체가 ‘전도망상의 극치’지만 나에겐 ‘전공의를 처단한다’는 대목이 가장 기괴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죽인다’고? 세상에 이런 ‘미친’ 문장이 또 있을까? 생각건대 국민건강을 지키는 의사들조차 적으로 삼았다면 그건 모든 국민을 적으로 돌렸다는 뜻이다. 대체 뭐가 그토록 두려웠을까?      

‘집착이 없으면 동요하지 않는다./집착하여 동요하는 사람은/이 세상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떠도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지배, 약탈, 조작 등의 행위에 사로잡히면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다. 거추장스러운 존재들은 그냥 싹! 쓸어버리면 된다. 그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술이다. 일단 그 힘에 도취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때부터 주술의 환타지가 제공하는 가상현실 속에 갇히게 된다. 광기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초연결망’이 깔려 있는 글로벌 메가시티 서울 한복판에 군대를 동원하는 ‘황당무계한’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군인이 통치의 전면에 나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았을까? 몰랐으리라. 아니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리라. 무지의 무지의 무지, 그것을 일러 무명이라 한다.

이렇듯 지난해 12월 3일 밤, 우리는 무명에서 카오스가 생겨나는 유전연기의 사슬을 생생하게 목도하였다. 만약 거기에서 끝났다면 우리는 지금도 혼돈의 아수라장을 통과하고 있을 터이다. 허나 어둠이 깊으면 빛이 생성된다고 했던가. 그날 새벽 이후 이 전도망상의 카오스를 전복하는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멸성제와 도성제로 이어지는 환멸연기의 대서사시가.

그 이야기는 다음 호에….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제목을-입력해주세요__복사본-002 (5).png


 

원본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양력 2026.8.6 목요일
(음력 2026.6.24)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