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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23. 청년이 묻고 붓다가 답하다 (2) - 거센 강을 건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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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2-28 09:25 조회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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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6-02-17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23. 청년이 묻고 붓다가 답하다 (2) - 거센 강을 건너라!

 

 

최상의 가르침에도 깨달음 완성은 오직 '나의 몫'

붓다와 마주친 청년들의 질문, 양극단과 탐욕 극복 등에 집중
이고득락 바람 현대와 같지만 행복의 기준은 오늘날과 판이
설명 자상하나 의존엔 단호한 무한변주··· 붓다 수사학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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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생성이미지]

 


‘영웅이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모였나이다. / 그들이 이 법을 알 수 있도록 / 부디 그들에게 설명해 주소서!’ (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바라문청년 열여섯 명이 붓다 앞에 앉았다. 이 청년들 역시 오랫동안 선정수행을 한 구도자들이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바라문청년들과 정각을 이룬 뒤 천하를 유행하는 청년붓다의 마주침! 가슴 뛰는 장면이다. 곧바로 질문의 향연이 펼쳐졌다. “세간은 무엇으로 덮여 있나요?” “세간의 큰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세상에 행복한 자 누구인가요?” “누가 양극단을 알고 중간에서 오염되지 않는 현자인가요?” “누가 탐욕을 극복했나요?” 등등. 청년들답게 거침이 없다. 

그리고 두려움을 벗어나 행복을 이루고자 하는 건 지금 우리네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기준이 ‘양극단을 아는 것’, ‘오염되지 않는 것’, ‘탐욕을 극복하는 것’ 등과 연관되는 건 좀 놀랍다. 우리 시대는 행복에 대해서 저런 기준을 설정한 적이 있었던가?     
청년 뿐나까의 질문은 좀 더 리얼하다. “바라문에서 범부에 이르기까지 세간의 모든 이들은 어찌하여 천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나요?” 

기성 종교인 브라만교는 사제와 제의 중심이었다. 사제들의 타락이 극심해지자 많은 구도자들이 숲으로 가면서 사문들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사에 대한 습속과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 왠지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지금 이 눈부신 문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의 이름으로, 심지어 무신론자들조차 제의(사실은 주술)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초월적 권능’에 의지하고 싶은 욕구는 이토록 질기다. 

그에 대한 붓다의 답변은? “누구나 세상에 존재하기 원하면서 / 늙어가기 때문에 제사를 지냈다.” 청년이 다시 묻는다. “과연 그들은 열심히 제물 올려 / 태어나고 늙고 죽음 극복했나요?” 행복이라는 주제가 ‘생로병사’의 문제로 변주되었다. 붓다의 답변은 단호하다. “재물에 의지하여 쾌락을 갈구하고 존재와 갈애에 사로잡힌 이들은 생사를 극복할 수 없다.”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버리고 / 갈애를 이해하여 번뇌 없는 사람들 / ‘그들은 거센 강을 건넜다’고 나는 말한다.”

그렇다. 생사를 극복하는 건 갈애와 번뇌의 ‘거센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비유가 주는 강렬한 효과 때문일까. ‘거센 강’은 이제 공통의 키워드가 되었다.      
“무엇이 거센 강물 막아주나요?”(아지따)
“태어남과 늙음과 슬픔과 비탄의 / 거센 강을 현자들은 어떻게 건너가나요? / 성자님! 부디 저에게 알려주세요.”(멧따구)
“두려운 거센 폭류 일어났을 때 / 그 물 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이 / 늙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섬을 / 스승님! 저에게 알려주세요.”(깝빠) 

청년들의 목소리가 간절하기 그지없다. 붓다는 늘 그렇듯 자상하게 일러주신다. 처음엔 ‘주의집중’, 그리고 ‘통찰지’를 말한다. 그래도 미흡하다 싶으면 더 자세히 풀어주신다.     
“위나 아래나 사방이나 중간이나 / 그곳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 그대는 그것을 바르게 알아서 / 이들에 대한 기쁨과 집착 / 그리고 분별을 몰아내고 / 존재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일체를 바르게 알라, 그 모든 것에 대한 애착과 분별을 벗어나라! 그러면 존재에 머물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은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청년 도따까가 말한다. “두루 보시는 당신을 공경하오니 / 싹까여! 의혹에서 저를 벗어나게 하소서!” 이건 질문이라기보다 애원에 가깝다. 다시 말해, ‘강을 건너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이젠 ‘직접 건너게 해달라’는 것. 

붓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도따까여! 세간에서 의혹 있는 사람을 / 누구든 내가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 으뜸가는 가르침을 배워 알아서 / 그대가 거센 강을 건너가거라!” 최상의 가르침을 주었으니 스스로 체험하여 그 힘으로 건너가라는 것. 하지만 청년 우빠씨와는 한술 더 뜬다. “두루 보는 분이시여! 거친 강을 건널 때 / 의지할 대상을 말씀해 주소서.” 아예 ‘의지할 대상’을 알려달란다. 제사에 대한 습속의 잔재일까? 붓다의 답변은? “‘원하는 것 없음’에 의지하여 거친 강을 건너가라!” ‘원하는 것 없음’에 의지하라고? 무슨 뜻인가? 그 무엇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말라는 것. 한마디로 ‘최후의 의지처’를 없애버린 것이다. 자상함과 단호함의 무한변주, 이것이 붓다 수사학의 정수다. 

청년들과 붓다의 문답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얻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붓다의 팔만사천 법문도 거뜬히 다 소화해 낼 것이다. 그럼 우리는 모두 깨닫게 되는가? 아니다! 그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건 오직 나의 몫이다. 만약 AI붓다한테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집착과 비탄에 빠진 생사의 거센 강을 건너라!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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