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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1. 마음은 쉬임없이 흐른다 – ‘에고’에서 ‘에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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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08-23 09:56 조회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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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5-08-18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1. 마음은 쉬임없이 흐른다- '에고'에서 '에코'로

 

자애는 닫힌 마음 흐르게 하는 인간 해방의 길

극단적인 폭력 사건은 흐름을 잃은 마음의 비극적 폭발
현대사회 비극의 원인은 마음 화석화...해법은 자애수행
에고 블랙홀에서 모든 존재와 공명하는 자애로 전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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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심은 어머니가 외아들을 지키는 마음으로 모든 존재와 공명하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경지이다. [AI 생성 이미지]

 

 

유례없는 폭염이 닥친 올여름, 폭염보다 더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60대 아버지가 30대 아들을 사제총을 쏴서 죽인 것이다. 얼마 뒤, 이번엔 아들이 부모와 형을 한꺼번에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들의 끔찍함은 ‘존속살인’이라는 것뿐 아니라 도무지 인과설정이 난감하다는 데 있다. 아들을 죽인 아버지는 ‘가정불화’가 있었다고 했지만 계속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사건 당일은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생일파티를 마련한 날이기도 했다. 부모와 형을 죽인 아들은 사건을 저지르고 그다음 날 태연히 잠을 자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생일파티와 총기 살인, 살인 뒤의 숙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의 극치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들의 마음 안에는 폭염을 방불케 하는 화염이 치솟았다는 것. 화염 속에서는 외부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도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잘 모를 것이다. 굳이 따져보면, 그 밑바탕에는 ‘나만 빼고 다 행복하다’, ‘모두가 나를 무시한다’ 등의 감정이 공통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이렇게 정리하면 더 소름 끼친다. 왜냐하면 이런 감정은 보통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느끼는 감정 유형이기 때문이다. 그 ‘사소한’ 감정들이 저토록 엽기적 사건의 원천이 된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그런 감정의 회오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이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냉소와 비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붓다의 응답이 바로 ‘멧따-숫따(자애의 경)’이다. ‘자애’는 지극히 평범한 낱말이다. 그래서인가. 딱히 도덕적, 윤리적 긴장을 야기하진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의 주제 역시 늘 복수심과 적대감이 대세를 이룬다. 아마도 그런 감정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다이나믹하다는 전제가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붓다에 따르면 그것은 ‘전도망상’이다. 그 망상을 뒤집기만 해도 마음은 절로 자애를 향해 나아간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고” “만족할 줄 알아 검소하고/ 할 일이 별로 없어 한가하고/ 지각활동 고요하며 사려깊”은 것, 이것이 자애심의 출발이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사항이지만 실천은 몹시 어렵다. 또한 여기서 더 주시해야 할 것은 구체적인 덕목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유연성이다. 다시 말해, 자애란 굳게 닫힌 마음을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파동은 실개천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에 도달한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여라!”(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물이든. 헌데, 이 존재들이 행복하기 위해선 그들을 둘러싼 모든 관계망이 두루 평안해야 한다. 그렇게 방사선처럼 퍼져나가다 보면 마침내 ‘모든 존재’의 행복을 기원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드높은 경지임에 틀림 없지만, 한편  아주 자연스런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서 끝인가? 아니다! 마음은 이제 지평선 너머 드넓은 창공으로 솟아오른다.

“살아 있는 존재는 어떤 것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길든 짧든 크든 작든 중간 크기든/ 크고 작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먼 곳에 살든 가까이 살든/
태어난 존재든 태어날 존재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여라!”

경이로운 대목이다. 특히 ”길든 짧든 크든 작든 중간 크기든/ 먼 곳에 살든 가까이 살든“이라는 표현은 충격적이다. 존재와 시공의 분별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모든 존재의 행복을 기원하는가? “어머니가 목숨 걸고/외아들을 지키듯이” 해야 한다. 이보다 더 생생하고 절절한 심정이 있을까. 티베트불교에선 이 구절을 이렇게 변주한다. 윤회의 기나긴 과정에서 모든 존재는 한때 나의 어머니였다고. 그 지극한 돌봄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었음을 잊지 말라고.

이제 모든 경계는 사라졌다. ‘위로 아래로 사방 천지로’, ‘거침 없이 원한 없이 아무런 적의  없이’ 흘러간다. 이것이 ‘한량없는 마음’이다. 그때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마주치는 모든 존재와 상응하여 ‘울림과 떨림’을 만들어낸다. 매순간 생기발랄한 ‘에코(eco)’를 생성해내는 힘, 그것이 바로 자애심이다.

만약 이 경로에서 이탈하면 어떻게 될까? ‘에고(ego)’의 블랙홀에 갇혀 화석처럼 굳어가다 돌연 화산처럼 폭발하게 된다. 그것이 소위 ‘마음지옥’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저 끔찍한 사건들을 비롯하여 우리네 일상의 크고 작은 번뇌 역시 다 거기에서 비롯한다. 하여, 우리가 닦아야 하는 것은 도덕 준칙이나 윤리적 강령 이전에 마음을 ‘머물지 않고 흐르게 하는’ 것이다. 에고에서 에코로! 붓다는 말한다. 그것이 마음의 ‘본래면목’이라고. 인간에 대한 깊은 냉소와 허무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거기에 달려 있다고.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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