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2. 질문하라, 길이 열릴 것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08-30 11:06 조회127회 댓글0건본문
법보신문 2025-08-29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12. 질문하라, 길이 열릴 것이다!
바른 삶을 위한 원초적 동력은 '질문'
목동천신부터 야차까지, 붓다 찾아와 질문한 이들
평범해 보이지만 마음 새기지 못했던 삶의 길 찾아
'검색 만능주의' 낳은 '질문 능력 상실'이 시대 비극

'비인간'들이 던지는 질문은 평범하지만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인간들의 좋은 '길벗'이다. [AI 생성 이미지]
‘숫따니빠따’를 대표하는 경 중에 ‘소치는 다니야의 경’이 있다. 다니야와 붓다의 게송배틀이 다니야의 귀의로 끝날 즈음, 문득 마라 빠삐만이 끼어든다. “아들을 가진 사람은 아들 때문에 기뻐하고/ 소를 가진 사람은 소 때문에 기뻐한다./ 사람의 기쁨은 가진 것 때문이니/ 가진 것이 없는 사람 기뻐할 것이 없다.” 과연 욕계를 주관하는 인물답게 소유가 주는 기쁨을 노래한다. 그에 대한 붓다의 응답.
“아들 가진 사람은 아들 때문에 슬퍼하고/ 소를 가진 사람은 소 때문에 슬퍼한다./ 사람의 슬픔은 가진 것 때문이니/ 가진 것이 없는 사람 슬퍼할 것이 없다.”(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대구법을 경쾌하게 활용하면서 마라의 허망한 생각을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이런 식으로 ‘숫따니빠따’에는 ‘비인간’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그들은 빠삐만처럼 붓다의 길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붓다를 찾아와 질문을 한다. 그들은 대체 뭐가 궁금했을까?
먼저, 붓다가 제따와나 사원에 머무실 때였다. 밤이 되자 천신이 휘황찬란한 빛으로 숲을 훤히 밝히며 붓다를 찾아왔다. 그리고 묻는다. “파멸로 가는 문은 무엇인가요?” 붓다의 대답은 명쾌하다. “해야 할 일 좋아하면 성공하고/ 해야 할 일 싫어하면 파멸한다.” 이렇게 시작한 문답은 무려 12가지나 이어진다. ‘열의 없고 게으른 사람이/ 화낼 줄밖에 모른다면’, ‘큰 재산을 가진 사람이/ 황금이며 먹을 것 쌓아놓고서/ 혼자서 좋은 음식 먹고 있다면’, ‘크샤트리아 가문에 태어나/ 가진 것 없이 욕망만 커서/ 왕위를 차지하기 원한다면’ 등등이 파멸의 문이라고 일러준다. 너무 공감되지 않는가?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해서 파멸의 문을 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신들이 뭐 이런 상식적인 내용을 물어보지? 하지만 신들도 이런 이치를 잘 모른다. 모르니까 묻는 것이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다. 천신 못지 않은 빛과 영광을 누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들 역시 잘 모른다. 또 대충은 알지만 그것을 가슴 깊이 새기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파멸의 문에 서 있게 된다. 그러니 천신처럼 계속 물어야 한다. 듣고 새기기 위해!
다른 한편, ‘알라와까’ 야차의 질문은 아주 거칠다. 만약 대답을 하지 못하면 붓다의 마음을 휘저어버리거나, 심장을 찢어버리거나, 갠지스 강에 던져버리겠다고 호언한다. 붓다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그렇지만 벗이여, 그대가 원한다면 묻도록 하시오.” 태도는 거칠지만 ‘질문 자체는 참 좋은 것’이라는 붓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의 질문은 더 평범하다. “으뜸가는 삶과 재산은 무엇인가?” “행복을 가져오는 좋은 실천은?”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는가?” “저승갈 때 어찌해야 슬퍼하지 않는가?” 등등. 붓다는 자상하게 답하신다. “적절한 일을 인내심 있게/ 열심히 하면 재물을 얻고/ 진실로써 명성을 얻고/ 베풂으로써 친구들을 사귄다.” “진실과 법도, 열성과 베풂/ 이들 네 가지 법이 있으면/ 죽은 후에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등등. 답을 들은 야차는 환희용약한다.
또 다른 야차도 있다. ‘설산야차’ 헤마와따와 ‘칠악야차’ 싸따기라. 붓다를 만나기 전, 둘은 서로 붓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같은 미천한 존재한테도 관심을 가질까?”에서 시작하여 “생명을 해치지는 않는가?” “쾌락을 즐기지는 않는가?” 등등. 그런 다음 붓다를 찾아가 묻는다.
질문1 : 세간은 어디서 생겼나요?/ 세간은 어디에서 관계를 맺나요?/ 세간은 무엇에 의존하고 있나요?/ 세간은 어디에서 고난을 겪나요?
질문2 : 거센 강물을 건너는 자 누구인가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에서/ 가라앉지 않는 자 누구인가요?
상당히 수준이 높다. 질문1에 대한 붓다의 답은 ‘여섯’이다. 세간은 여섯에서 생겨났고, 여섯에서 관계를 맺고, 여섯에 의존하며, 여섯에서 고난을 겪는다. ‘여섯’이란 무엇인가? 육입처, 곧 ‘안이비설신의’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을 자아로 간주하고, 그 자아가 세상을 만든다는 것. 그러니 ‘이들에 대한 욕망을 버리면 괴로움을 벗어난다.’ 질문2에 대한 답도 같은 맥락이다. ‘마음이 집중된 지혜로운 자’, ‘쾌락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거센 강물을 건너고’ ‘깊은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 야차들은 환호한다. “오늘에야 우리는 새벽을 보았네./ 어둠 뚫고 떠오르는 밝은 태양을.”
이렇듯 ‘비인간’들이 던지는 질문은 평범하지만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무섭거나 혐오스런 존재가 아니라 인간들의 좋은 ‘길벗’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바, 질문은 존재의 원초적 동력이다. 질문은 정답이 아니라 길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우리 시대가 왜 길을 잃고 헤매는지를. 검색만능주의에 갇혀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러면서 다들 답답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야차들이 이런 ‘꼬라지’를 본다면 이렇게 충고할 것이다. “바보야, 질문을 해야 길이 열리지!”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