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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 - 좋은 벗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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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06-18 13:43 조회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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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5-06-27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3)
좋은 벗과 함께 가라!
 

혼자서 갈 수 있는 자만이 함께 갈 수 있다

고립은 위안 아니라 병이며 수행은 새로운 관계로의 전환
무소의 뿔처럼 걷되 진정한 해탈은 '좋은 벗'과 함께 완성
'홀로의 길' 끝에서 만나는 연대가 붓다가 말하는 진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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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 머물던 이가 수행자의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선다. 고립이 아닌 자발적 고독, 단절이 아닌 선한 동행이 시작된다.[AI 생성 이미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키워드는 ‘혼자서’다. 참 쉬운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만은 단순치 않다. 첫 번째 의미는 ‘신을 비롯하여 그 어떤 초월적 힘에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라는 뜻이다. 어떻게? ‘사자’처럼 두려움 없이!, ‘바람’처럼 걸림 없이!, ‘연꽃’처럼 물들지 않고! 가면 된다. 두 번째 의미도 만만치 않다. 모든 것을 다 떨치고 ‘홀로 살아 가라’는 것. 그렇게 되면 이 게송은 ‘고독에 대한 낭만적 예찬’이 된다. 실제로 이런 의미로 회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이런 대목 때문에 그럴 것이다.

‘처자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재산도 곡물도 친척도 버리고/ 아낌없이 모든 욕망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잠시도 해탈에 이를 수 없다./ 태양족의 이 말을 명심하고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처자, 부모, 재산, 곡물, 친척, 친구 등 다 버려야 한다는 것. 맞다 그래야 윤회를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과 맺는 ‘관계방식’에 있다. 이 모든 관계망은 ‘대나무 가지가 뒤엉키듯’ 얽혀 있다. 거기서 싹트는 건 ‘감각적 쾌락’ 아니면 ‘잡담과 말다툼’이 대부분이다. 하여, 그 경로는 뻔하다. 애착은 재난으로, 연민은 환멸로, 사랑은 미움으로. 그게 아니더라도 끝내는 권태와 매너리즘으로. 그렇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다 이런 류의 번다한 관계망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이 그물망에서 도주하지 않고서는 해탈은커녕 그저 ‘평범한 행복’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일연속극만 봐도 그렇다. 수많은 채널에서 수십 년을 반복하고 있는 테마는 ‘가족막장극’이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 형제, 그리고 연인과 동료, 모두가 서로를 질시하고, 경멸하고, 약탈하기 바쁘다. 지순한 러브스토리조차 이기심과 욕망의 아수라장이다. 현실은 어떨까? 더 심하다. 그 결과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제 가족은 물론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되었다. ‘혼자 놀고 혼자 먹고 혼자 노래하는’, ‘홀로이즘’의 환타지에 물든 것이다.

그럼 이것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얽히고 설킨’ 관계망을 탈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외딴 방’으로 도주한 것에 불과하다.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 온갖 심리적 질병이 만연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그러다 보니 마침내 ‘외로움’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같이는 괴롭고 혼자는 외로운’,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는 형국에 놓인 셈이다.

그럼 붓다의 처방은 무엇인가? 출가다! 집에서 숲으로! 하지만 그것이 은둔과 고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핵심은 방향의 대전환이다. 욕망에서 수행으로! 소유에서 자유로! 이것이 출가의 ‘찐’의미다. 따라서 그것은 고독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좋은 동료 얻는 것을 우리는 찬탄한다./ 낫거나 동등한 친구를 사귀어라!
많이 배워 법을 알고 재치가 있는/ 훌륭한 친구를 가까이 하라!
신념을 가지고 착하게 사는/ 현명한 동료나 도반 얻으면/ 즐겁게 난관 극복하면서/마음 모아 그들과 함께 가라!' 

한마디로 ‘좋은 벗을 만나’라는 것. 당시 붓다를 찾아 숲으로 온 이들은 대부분 크샤트리아 출신의 왕들이나 부유한 장자 가문의 청년들이었다. 세속적 부와 영광을 원없이 누렸건만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질려 버렸다. 질투에 여념이 없는 왕비와 후궁들, 신하들의 끝없는 탐욕, 속임수에 능한 요리사 등등. 그들은 미련 없이 왕궁을 버리고 숲으로 갔다. 거기에는 길을 안내하는 스승이 있고, 함께 서로를 북돋아주는 벗이 있었다.

붓다는 진정 우정의 찬미자였다. ‘벗이여’라는 말을 즐겨 썼고 제자들에게도 자신을 ‘벗으로 삼음으로써’ 해탈을 이루라고 당부했다. ‘아난다여, 좋은 선배, 좋은 벗, 좋은 후배가 있다는 것은 이 성스러운 수행의 전부다.’ 물론 길 위의 우정에도 갈등과 불화가 있다. 그에 대한 붓다의 태도는 단호하다. 만약 ‘의도가 사악하고/ 수행의 경계가 사악한’ 이를 만나면, ‘모두가 하나 되어/ 그를 멀리하라!/ 껍데기는 날려 버리고/ 쓰레기는 치워버려라!’(‘담마짜리야’경) 우정에 대한 붓다의 열정을 짐작케 해준다.

요컨대, ‘홀로’와 ‘함께’는 결코 선택사항이 아니다. ‘혼자서’ 갈 수 있는 자만이 ‘함께’ 갈 수 있는 법이므로. 그런 점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기저에는 ‘좋은 벗과 함께 가라’는 멜로디가 함께 울려퍼진다. 인간관계로 인한 번뇌가 극에 달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더 생생한 감로수가 또 있을까.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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