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쓰기] 통쾌한 복수, 불편한 회복… 나의 선택은? > MVQ글소식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 > MVQ글소식

[칼럼쓰기] 통쾌한 복수, 불편한 회복… 나의 선택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7-19 10:07 조회71회 댓글0건

본문

통쾌한 복수, 불편한 회복… 나의 선택은?


1.jpeg

조 은 정 (곰숙씨의 글쓰기공장)

202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전국 거점 국립대 가운데 6곳이 학교폭력 가해 기록이 있는 지원자45명을 불합격 처리했다. 경북대가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대 8명, 강원대 5명, 전북대5명,경상국립대 3명, 서울대 2명 순이었다. (전남대 등 4개 대학은 기록을 반영하지 않음) 2025학년도대학 입시부터는 모든 대학이 학교폭력 기록을 평가에 반드시 반영해야 하고, 이에 따라 가해 기록이 있는 지원자의 불합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대입에 기록을 반영하는정책의 목표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책임 있는 학교문화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과연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입 불이익’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오히려 가해자가 반성보다 소송을, 사죄보다 기록 삭제를 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교육청 행정심판과 법원 행정소송 절차에 따른 기록 삭제가 가능함)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오직 가해자의 ‘점수 깎기’에만 매몰되는 것은 아닐까? 교실이 사과와 용서가 오가는 배움터가 아니라, 증거와 변론이 오가는 미니 법정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의 피해자는 분노하고 저주하며 가해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상상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인간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가해자에 대한 응징만으로 피해자의 진정한 일상 회복이 가능한가이다. 최근 드라마 ‘모범택시’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피해자를 위해, 혹은 피해보상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건에 대해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내용이다. 이는 현실 법체계의 무능에 냉소하는 대중에게 통쾌한 복수라는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준다. 학교폭력 또한 현실에서 강력한 징계를 내림으로써 우리 사회는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복수가 완결된 드라마에서 피해자는 그 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오히려 법에 대한 혐오와 무능함에 좌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를 무대 밖으로 쫓아내는 것만으로 피해자의 무너진 세계는 저절로 복구되지 않는다.

 

2.jpeg

현실의 피해자는 분노하고 저주하며 가해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상상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인간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가해자에 대한 응징만으로 피해자의 진정한 일상 회복이 가능한가이다.

 

가해 학생이 대학에 떨어지는 것과 그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고 피해 학생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피해자의 치유에 더 근본적으로 도움이 될까? 물론 가해 학생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 없는 회복은 또 다른 폭력이다. 하지만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가해 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와 평범한 일상으로의 회복이다. 그러나 현재 학교폭력예방법은 학폭 신고가 이뤄지면 ‘접촉’ 자체를 금지한다. 오해가 있었을 경우 풀 기회도, 사과를 하거나 받을 기회도 갖기 어렵다. 학교장 자체 해결로 마무리될 수 있는 일조차 교육청 학폭위로 회부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일단 학폭위가 열리면 가해자는 ‘맞폭’(맞대응 학교폭력 신고)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많다. 처벌이 상정되는 만큼 반성보다는 방어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입 반영이라는 강력한 제재는 학폭 기록을 생기부에 남기지 않으려는 행정소송을 남발하게 한다. 오죽하면 ‘학교징계 생기부 삭제 빠르게 변호사와 준비해야’라는 법무법인의 홍보문구까지 나오겠는가? 이러다 보니 되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곤 한다.

회복을 말하지 않는 사회는 안일하다. 징계라는 간편한 해결책 뒤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회복을 말하지 않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서울 지역의 유일한 학폭 중재 기구인 북부교육지원청 산하 ‘관계 가꿈 지원단’ 사례를 살펴보자. ‘관계 가꿈 지원단’은 학교폭력 사안을 처벌 중심이 아니라 회복과 교육의 관점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이다. 지원단 대표는 자신들의 역할이 ‘사과와 화해’의 물꼬를 터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폭 신고가 학폭위에 회부되기 전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을 화해·조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응징했다’보다는 ‘용서했다’는 결말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용서의 열쇠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의 진정성이었다고 한다.(관계조정 건수 2023년 5건, 2024년 61건, 2025년 110건/2024년과 2025년의 평균 조정 성공률 약 75%)

 

3.jpeg

회복을 말하지 않는 사회는 안일하다. 징계라는 간편한 해결책 뒤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회복을 말하지 않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폭력이 단 한 건도 없는 무결한 교실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폭력의 부재가 아니라, 갈등을 마주하는 태도에 있다. 진정한 학교폭력 예방은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어떻게 책임지고 사과해야 하는지, 상처받았을 때 어떻게 용기 있게 말하고 회복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학교는 행정 처분 집행자가 아니라, 깨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회복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가해자를 교실 밖으로 몰아내는 데서 안도하기보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직면하도록 요구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실제로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를 묻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회복은 느리고, 고단하며, 때로는 실패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렇기에 모두의 회복을 끝까지 요구하는 일, 그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용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력 앞에서 너무도 손쉬운 방관자가 되고 만다. 사적 복수극의 통쾌함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책임과 치유의 길을 함께 열어 갈 것인가? 지금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과연 회복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