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필사로 혁명하기 > MVQ글소식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 > MVQ글소식

[감성에세이] 필사로 혁명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6-07-30 10:17 조회71회 댓글0건

본문

1.jpeg


신 미 균 (토요 감이당 주역스쿨)

감이당에 온지 이제 2년이 지났다. 나는 왜 감이당에 왔을까? 골프를 취미로 치기엔 시간이 아까웠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밥 먹는 즐거움은 두 시간이 지나면 집에 가고 싶어졌다. 이야기에 형식적인 응대는 일하는 것보다 즐겁지 않았다. 쇼핑도 나에겐 매우 곤혹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유일하게 신나게 한건 모든 방송사에서 하는 드라마를 몇 년간 본거다. 그러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드라마를 보다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을 때, 내 생일선물로 다시 태어나고자하는 바램으로 감이당 등록을 했다. 매일 두 시간의 여가 시간을 드라마 대신 다른 어떤 걸로 채우고 싶었다. 사람에게 변화가 생기려면 혁(革) 괘의 기일내부(已日乃孚)가 말하듯 시기가 무르익어야 한다. 진력이 날 때까지 드라마를 본 후에라야 다시는 하고 싶어지지 않는 법이다.

작년 발제는 주역의 48번째 괘인 수풍정(水風井)괘였다.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을 제공하는 우물이다. 이 우물은 사람이 오고 가며 사용되어지고 시간이 흐르면 수리가 필요하고 바닥의 흙을 갈지 않으면 탁해져서 사용이 어렵게 된다. 내 삶이 이미 다 사용되어진 우물 같았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운 아이는 독립을 했고, 문제 많던 시댁 식구들도 다 잘살게 되었다. 그들을 위한 나의 임무는 끝이 났다. 나는 쓰임이 다한 우물로 수리를 하던가 새 우물을 파야한다.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2.jpeg

내 삶이 이미 다 사용되어진 우물 같았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운 아이는 독립을 했고, 문제 많던 시댁 식구들도 다 잘살게 되었다. 그들을 위한 나의 임무는 끝이 났다. 나는 쓰임이 다한 우물로 수리를 하던가 새 우물을 파야한다.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올해 49번째 괘인 택화혁(澤火革)이 나의 괘로 온다. 괘사는‘혁, 기일내부, 원형리정. 회망(革. 已日乃孚. 元亨利貞. 悔亡)’이다. 혁명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시간이 무르익어 사시의 태양을 가리키며 믿음까지 동반되어야 한다. 거기에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사덕을 모두 갖추고서야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사덕을 모두 갖추기는 쉽지 않다. 택화혁은 못(澤) 아래에 불(火)이 있는 형상이다. 물은 불을 끄려하고 불은 물을 말리려한다. 이 상극의 에너지는 기본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혁명의 순간을 의미한다. 나에게 꼭 맞는 괘이다.

3.jpg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하고 있는가? 매일 드라마 보는 시간은 필사와 책 읽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읽고 쓴다. 필사를 하다 세탁기 알람 소리에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다시 쓴다. 때로는 세탁기 알람이 방해가 아닌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허벅지가 뻐근하고 팔이 저릴 때, 세탁기 알람 소리는 친구의 전화만큼 반갑다. 의자에서 일어서는 게 이렇게 즐거움이 된다. 난 의자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터치만 하면 볼 수 있는 드라마 시청 후에 이상하리만치 현실에 불평을 쏟아내는 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쉽지는 않지만 필사를 꾸준히 하다 보면 시간이 누적되어 어느 순간 그 어렵던 한자를 내 손이 먼저 쓸 때가 있다, 한 줄 외우기도 힘든 내가 한 괘를 완성할 때 마다 골프 코스를 프로와 치다가 70타로 마무리한 기쁨이 있다. 난 아침마다 이글과 버디 때론 알바트로스를 오가며 필사를 한다. 물론 보기와 더블보기, 벙커는 수없이 존재한다. 나는 작년에 32괘를 외워서 시험을 봤다. 드라마와 바꾼 생활 변화의 결과이다.

변화의 시작은 드라마를 끄고 책상에 앉는 작은 멈춤에 있었다.‘초구, 공용황우지혁(鞏用黃牛之革)’. 황소의 가죽으로 굳게 묶는다. 의욕만 앞서 설익은 변화를 시도하지 말고, 아직은 내면의 힘을 기르며 스스로 단단히 규율을 지켜나가야 한다.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혁명의 첫 시작은 책상에 앉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필사를 하는 것이다. 필사는 바른 자세로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으뜸되고, 형통하고, 이롭고, 올곧게 가기 위한 첫 시작이다. 아직도 허세스런 특징은 버리지 못했다. 친구들과 약속 시간에 먼저 도착해 카페에서 냅킨에 괘를 쓴다. 친구들이 놀라며 볼 수 있게 옆에 놓아둔다. 에르메스 백을 산 친구가 테이블에 가방을 살며시 올려놓듯 나는 주역의 괘를 쓴 냅킨을 올려둔다. 올해는 이 허세도 그만할 예정이다. 32괘를 외워서 쓸 수 있으니 그런 장난은 이제 안 해도 된다. 친구들을 위해 얇은 니체 필사책을 선물로 올려놓을 예정이다.

필사로 인해 달라진 나를 보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떠오르면 펜을 잡고 주역의 괘를 외워서 쓴다. 외운 괘가 생각이 안 날까 살짝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암기한 단어들을 정성스레 쓴다. 기억나지 않는 한자를 되뇌이며 쓰다보면 내가 언제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잊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누군가를 미워할 시간이 없다. 한 주에 한 괘를 완성해 나가다 보면 필요 이상의 불필요한 행동을 안 하게 된다. 아버지는 내가 자주 오길 바라신다. 매일 간병인이 오고, 세끼를 어머니가 매일 따뜻하게 밥을 지어드린다. 그럼에도 요구하는게 많으시다. 예전 같으면 뒷골을 부여잡으며 아버지의 마음에 맞춰드렸었다. 주5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젠 내가 가능한 시간을 알려드리고 솔직하게 나를 드러낸다. 방문 가능한 날을 알려드린다. 원형리정에 입각한 거절은 신기하게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불평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드린다. 아버지도 매일 필사 숙제가 있으니 그 안에서 성장하시길 바란다. 나만 성장하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 한 주에 한 괘, 두 주에 두 괘, 점차 늘어나 8주가 되면 여덟 개의 괘를 외워서 쓰게 된다. 일상의 자잘한 고민들과 비효율적인 생각들은 내 곁에서 멀어진다. 나에게 필사와 암기는 참 좋은 보호막이다. 올해 64괘를 외워야 하니 매일 일정 시간은 주역과 함께해야 한다. 나의 보호막이 더 두터워질 듯하다.

그럼 나의 변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완전한 변모를 이루는‘구오, 대인호변, 미점유부(九五, 大人虎變, 未占有孚) 대인이 호랑이 가죽 무늬처럼 변함이니, 점을 치지 않더라도 믿음이 있다.’너무 멋진 구절이다. 겉치레만 바꾸는 것이 아닌 내면의 덕이 극에 달해 그 덕이 겉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며 세상을 새롭게 하는 기상이 뚜렷한 호랑이가 떠오른다. 나도 남의 눈치를 보고 나를 죽이며 주변의 시선에 맞추는 행동대신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하고,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빛바랜 털을 갈아치우고 싶다. 언젠가 내가 선명하게 드러나 고유한 무늬가 내 몸에 새겨지길 기대해 본다.

3.jpg

나도 남의 눈치를 보고 나를 죽이며 주변의 시선에 맞추는 행동대신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하고,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빛바랜 털을 갈아치우고 싶다. 언젠가 내가 선명하게 드러나 고유한 무늬가 내 몸에 새겨지길 기대해 본다.

 

변혁의 과정은 가죽이 썩지 않게 가공하는 지난한 과정의 무두질이 필요하다. 동물의 가죽이 썩지 않고 무두질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옷이 되고, 가방이 되고, 신발이 된다. 우리의 내면도 반복적인 과정으로 무두질을 거쳐야 단단하게 자신의 원칙이 만들어진다. 나는 필사로 혁명 중이다. 나의 변화를 주위에서 조금씩 눈치를 챈다. 먹는 음식도 사람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거주하는 공간도 단순하고 단정하게 정돈이 되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