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축제인가 아니면 거대한 ‘한정판 굿즈 팝업 스토어’인가. (…) 이날 현장에는 경력이 오래된 출판인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압도적인 인파가 몰렸다. 대다수가 10대에서 30대까지 젊은 세대였다. 키링(열쇠고리), 스티커, 책갈피…. 도서전 어디를 가나 굿즈가 있었다.(<책 축제에 온 독자들 사로잡았다…거대한 한정판 굿즈 팝업 스토어>, 오경진, 서울신문, 2025.06.19.)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철학책 혹은 불교를 공부하기보다 ‘소비’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기 전에 ‘소비자’로 자랐다. ‘불안하면 결제하라!’ 부족함을 느끼면 곧장 물건을 사서 채우는 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해결 방법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힘들거나 삶이 공허할 때, 철학을 공부하기보다 ‘소비’하는 쪽을 택한다. 불교의 깊은 가르침이나 철학 책에 적혀있는 지혜는 예쁜 굿즈나 힐링 상품이 되어 장바구니에 담긴다.
내가 딱 그랬다(^^) 스님의 말에 마음이 동해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 내가 제일 열심히 했던 것 중 하나는 ‘쇼핑’이었다. 화려한 도시에 어울리는,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화려하고 힙한 옷이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시골’스러운, 소박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옷을 많이 샀다. 절복도 꽤 샀다. 사실 이런 옷이 더 비싸다. 사놓고 입지도 않을 때도 많았고, 어떤 옷은 상표도 떼지 않은 채 옷장에 넣어두기도 했다. 내 지출의 상당부분은 옷 쇼핑이었다.
우리가 불교를 가치를 소비하는 방식은 SNS 피드만 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생샷 성지’로 소문난 사찰에 줄을 선다. 사람들은 처마 밑에서 명상을 하는 ‘척’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리고, 사진 아래에는 #무소유나 #비움 같은 해시태그가 달린다. 굿즈 열풍도 마찬가지다. ‘깨닫다’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나, 유명한 책의 구절이나 표지가 그려진 키링이나 스티커는 불티나게 팔린다.
사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실제 삶’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럴듯해 보이는 ‘이미지’를 사게 만든다. 진짜 수행은 땀 흘리는 인고의 과정이지만, 자본은 그 과정을 쏙 빼고 ‘단아한 옷을 입고, 명상하는, 소박한 내 모습’이라는 이미지만 골라 상품으로 만든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은 팔기 어렵다. 실제 수행의 고통은 소거하고, 그 수행이 주는 ‘힙한 이미지’를 소비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도 아주 짧게! 실제 내 삶에 옷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이미 충분히 많았다. 나는 새로 산 옷을 입고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작은 마을을 돌아다녔다. 우린 모두 소비자로 길들여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수 기운은 만물의 근원이자, 심연으로 침잠하여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응축된 힘이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 기운은 방향을 잃었다. 수 기운은 우리에게 내가 왜 불안한지 그 뿌리를 파헤치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고민 대신 귀여운 염주를 결제한다. 깊은 바다로 내려가 나를 마주해야 할 에너지는 상품을 결제하는 힘으로 흩어졌다.
수기운의 핵심 감정은 ‘두려움’이다. 자본은 그 자체로 작동하지 않는다. 욕망은 두려움과 함께 자란다. 소비로 얻은 안도감은 금세 증발하고, 자본은 다시 새로운 두려움을 만들어 우리가 또 다른 상품을 찾게 만든다. “사람으로 태어나 소비자로 자랐다”는 말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 거대한 두려움의 회로에 갇혀버렸다는 슬픈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