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당시의 가톨릭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자연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에 던진 질문은 간명했다. ‘왜 사물들은 변화하고 움직일까?’ 자연의 변화와 운동이 그의 탐구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어째서 사물들이 움직이는 이유가 궁금할까. 왜 그것이 유독 눈에 띄게 될까. 그건 사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사물들의 변화와 운동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요컨대, 그건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었다. 그에게 자연의 자연스러운 모습, 그것은 정지 상태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은 어떤 면에서 지극히 자연스럽다. 자신의 방을 둘러보라. 대부분의 것들이 정지해 있다. 그 속에서 무언가 움직인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사물들은 그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은 우리의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감각 경험에 기대어 있다.
물론 우리의 감각에도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바로 하늘의 사물들. 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를 둘로 나눈다. 계속해서 운동하는 하늘이라는 세계와 정지 상태가 기본값인 지상이라는 세계. 그는 이 둘의 차이를 사물들의 본성에서 찾았다. 우선 하늘의 존재들은 ‘에테르’라고 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불변의 영원한 존재로서 완전한 운동인 원운동을 하고 있다.
반면 지상의 존재들은 4가지 요소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먼저 4가지 본성이 있는데, 따뜻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습함이다. 다음으로 이 본성들이 헤쳐 모여 4가지 요소가 생긴다. 물, 불, 흙, 공기다. 지상의 사물들은 이 네 요소가 서로 다른 비율로 섞여서 만들어진 혼합물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물들이 운동하는 이유가 있다.
4요소인 물, 불, 흙, 공기는 그 본성에 따라 각자만의 자리를 가진다. 가장 무거운 흙은 맨 아래 자리인 땅에 있으려 하고, 물은 그 위에, 다시 공기는 물 위에, 그리고 가장 가벼운 불은 맨 위에 있으려 한다. 그런데 지상의 존재들은 이 요소들이 지저분하게 섞여 있다. 물론 사물마다 각각이 가진 요소들의 비율은 다르다. 이를테면 어떤 것은 불의 요소가, 어떤 것은 공기의 요소가 주된 본성을 이룬다. 그리고 이런 주된 요소가 사물들이 머무르는 자리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사물들이 자신의 고유한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운동이 시작된다. 자신의 본성에 적합한 자리를 찾아가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찾으면? 운동은 끝난다. 위로 던진 공이 아래로 다시 떨어지는 이유, 끓는 물의 수증기가 위로 올라가는 이유, 그것은 사물들이 자신의 영역으로 되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은 사물들이 자기 자리에 있지 못한 것으로 인해 발생한다. 요컨대, 운동이란 무질서나 균형파괴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자연은 이 무질서를 회복해서 ‘코스모스(질서)’를 이루려 한다. 과학사가 코이레의 말대로, “모두가 ‘질서 잡혀’ 있다면,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자연스러운 장소에서 휴식하고, 거기에 머물며, 거기를 떠나지 않”는다. 사물들은 자신들의 본성에 맞는 장소를 찾아 그곳에 휴식하고자 ‘운동’하는 것이며, 질서로의 회귀가 운동이다. 하여 운동은 비정상적인,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